매화리 파평윤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82
한자 梅花里坡平尹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매일1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13가구[2009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매일리에 있는 파평 윤씨 집성촌.

[개설]

파평윤씨는 경기도 파주시를 관향으로 하고,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18세기 중·후반에 광산(光山) 윤의형(尹義衡)[1747~1838]이 청송에서 매화리로 옮겨와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파평윤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매화리마을은 달산면 소재지에서 3㎞쯤 떨어진 마을이다. 달산면 소재지에서 국가지원지방도 제69호선을 따라 옥계리 방향으로 가다가 약 2㎞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면 매화리에 이른다. 영덕읍에서 지품면 신양리 삼거리를 경유하는 길은 약 16㎞ 되는 거리이다.

[명칭 유래]

조선시대에는 이 마을이 큰 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산하동(山下洞)'이라 하였다. 산 아래를 ‘뫼아래’ 또는 ‘뫼하리’라 하던 것이 ‘매화리’, '매화동'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서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산하동, 일이곡[현재 매일2리], 서점동[현재 매일2리]를 합하여 매일동이라 하고, 종전의 서면도 달산면으로 개칭하였다. 매일리(梅日里)는 매화동(梅花洞)과 일이곡(日伊谷)의 첫 글자를 취해서 명명한 것으로 매화동을 매일1리로 하고, 일이곡과 서점동을 매일2리로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파평윤씨 매화리 입촌조는 윤의형이다. 고려 말에 부마였던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이 매화동을 개척했다고 하나, 그 후손들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 호조판서를 지낸 명은(溟隱) 윤황(尹堭)[1404~?]이 단종복위 사건 때 병곡면 각리2리로 피신 와서 은거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한때 청송지역으로 이거하였다가 18세기 중·후기에 윤황의 13세손인 윤의형이 청송군 월막에서 매화리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윤의형이 입촌한 후 그 후손들이 세거하여 파평윤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현황]

『영덕군 향토사』[1992]에 의하면 매일1리[매화리]에 거주하는 총 42가구 중 파평윤씨가 21가구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외에는 평산신씨 7가구, 경주김씨 3가구, 영천이씨 3가구, 기타 성씨 8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2009년에는 총 35가구 중 파평윤씨는 13가구, 김녕김씨 5가구, 경주김씨 4가구, 평산신씨 3가구 등으로 파평윤씨의 가구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매화리에는 윤의형의 손자 윤정억(尹正億)[1807~1883]의 세덕을 기리기 위한 보본재(報本齋)[1897년 건립]와 윤의형의 현손 윤기영(尹基永)[1863~1925]의 덕행을 기리기 위한 매오정(梅塢亭)[1895년 건립]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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