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41
한자 李栽
영어공식명칭 Lee Jae
이칭/별칭 유재(幼材),밀암(密菴),금수병수(錦水病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7년연표보기 - 이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28년 - 이재 장악원주부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30년연표보기 - 이재 사망
출생지 수비촌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묘소|단소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무릉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재령
대표 관직|경력 장악원주부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이재(李栽)[1657~1730]는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학자로 문집 『밀암집(密菴集)』이 전한다.

[가계]

이재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菴)·금수병수(錦水病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이함(李涵), 할아버지는 증 이조판서(贈吏曹判書) 이시명(李時明), 아버지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다.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 박륵(朴玏)의 딸이고, 부인은 의성김씨(義城金氏) 김학규(金學逵)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재는 1657년 영해의 수비촌(首比村)[지금의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눈썹이 성글고 이마가 넓어서 할아버지 이시명성급(聖及)이란 아명(兒名)을 지어 주었다. 아버지 이현일 외에 중부(仲父) 이휘일(李徽逸), 숙부(叔父) 이숭일(李嵩逸)에게 학문을 익혔다. 13세 때에는 새해에 「자경잠(自警箴)」을 지었고 이를 보고 할머니인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張桂香)]가 「자경잠(自警箴)」을 칭찬하는 시를 지어서 장려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 이후 아버지 이현일이 출사하자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가서 지냈는데, 아버지 옆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데에 예절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이현일도 나포되어 국문을 받고 유배되는 동안 모두 배종하였다. 이현일이 풀려나 안동 금수에 거처를 정한 후에도 시종하였다.

1728년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안동의 거유(巨儒)로 안무사 박사수(朴師洙)와 진압을 논의하였다. 난이 끝난 이후 박사수의 천거로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천거되었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1729년에도 영조에게 추천되었지만 노령으로 인해 출사하지 않았다. 안동의 삼계서원(三溪書院), 호계서원(虎溪書院), 예안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원장을 역임하였고, 안동 금수에서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재는 아버지 이현일을 통해 퇴계학맥을 이어받았다. 이후 이재의 학문은 외손인 이상정(李象靖)에게 이어져 영남학파의 주류를 이루었다. 문집인 『밀암집(密菴集)』은 25권 13책[원집 23권 12책, 부록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집 외에 애사(哀辭)·축문·제문 등을 따로 모은 『밀암부여(密菴瓿餘)』가 있다. 저서인 『창구객일(蒼狗客日)』은 이현일이 유배 갔을 때의 일을 일기체 형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는 이황(李滉)이 편찬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그 제자의 『주자서절요강록(朱子書節要講錄)』을 수정 보완한 책이며, 주해서로 『주어요략(朱語要略)』과 『주전집람(朱全集覽)』을 남겼다.

『안증전서(顔曾全書)』는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의 언행(言行)을 여러 경전에서 채록하여 정리한 것이다. 『금수기문(錦水記文)』은 이현일의 가전을 편집하고 남은 글을 모은 것이며, 『성유록(聖諭錄)』은 이현일이 출사하던 시기인 1689년부터 1694년까지 건의한 상소문 등에 대해 임금이 내린 비답과 별유, 전지 등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상의 저서를 모아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밀암전집(密菴全集)』 2책을 출판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무릉리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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