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49
한자 道川里慶州李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Gyeongju-Lee Clan in Docheon-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도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53가구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도천리에 있는 경주 이씨 집성촌.

[개설]

경주이씨는 경상북도 경주를 관향으로 하고, 신라 알천양산촌의 촌장 알평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도천리는 역사가 오랜 마을인데 임진왜란 때 이수춘(李壽春)[생몰연대 미상]이 이웃마을 사암리에서 이 마을로 피난와 정착한 이후 마을이 더욱 번창하고 자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함으로써 경주이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입지]

남정면사무소에서 지방도 제930호선을 따라 달산면 옥산리 방향으로 약 3.5㎞를 가면 도천리에 이른다. 크고 작은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넓은 들[밭 13.2㏊, 논 62.2㏊]이 펼쳐져 있어서 예로부터 부자가 많은 마을이었다. 남쪽으로는 봉전리를 지나 남정면 소재지로 통하고, 북서쪽으로는 사암리를 지나 달산면 옥산리로 연결된다. 마을 서편에는 1943년에 준공한 도천저수지가 있어서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역사적으로는 경주와 강릉을 잇는 역로(驛路)가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마을로 추정된다.

[명칭 유래]

도천(道川)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마을 앞에서 두 내[川]가 합쳐지므로 ‘도내’ 혹은 ‘도천’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 역로를 따라 내가 흐르므로 ‘길내’ 또는 ‘질내’로 부르던 것이 한자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道川’으로 표기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1789년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도천리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사암1리로 가는 길목에 있던 덕성동을 병합해서 도천동이라 하고 남정면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옛날에 우씨(禹氏)가 살았다는 우씨터, 국씨(鞠氏)가 살았다는 국씨당이 있고 그곳에서 옛 기왓장이나 그릇 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마을의 형성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진주강씨, 김해김씨도 일찍이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경주이씨로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는 임진왜란 때 사암2리 당곡에서 이 마을로 피란 와 정착한 이수춘이다. 이때부터 마을이 더욱 번창하게 되었는데 이수춘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함으로써 경주이씨 집성촌이 되었다.

[현황]

『영덕군 향토사』[1992]에 의하면 도천리에 거주하는 총 102가구 중 경주이씨가 62가구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2006년에도 총 84가구 중 경주이씨가 53가구로 여전히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1935년에 펴낸 『조선의 취락(후편)』에 의하면, 1930년에도 도천리에는 총 135가구 중 경주이씨가 85호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도천리 마을에는 입촌조 이수춘과 그의 아들을 모신 재실 경모재(敬慕齋)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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