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51
한자 粟谷里平山申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Pyeongsan-Shin Clan in Sokgok-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4가구[2011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에 있는 평산 신씨 집성촌.

[개설]

평산신씨는 황해도 평산군을 관향으로 하고,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속곡리의 평산신씨는 17세기 초에 신종망(申宗望)[1605~?]이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가구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집성촌의 성격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입지]

속곡리지품면 소재지인 신안리국도 제34호선 분기점[신안교]에서 203번 마을도로[속곡길]를 따라 좁은 계곡을 5㎞쯤 들어간 자리에 있는 지대가 높은 마을이다. 해발 800m의 명동산 자락의 산줄기가 좌우로 뻗어 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고, 마을은 골짜기를 따라 듬성듬성 여러 개의 취락으로 분산되어 있다. 제일 위쪽에 있는 취락을 상속동, 가운데 있는 취락을 중속동, 제일 아래에 있는 취락을 하속동이라 하였다. 상속동에는 신씨가 많이 거주하여 신촌(申村)이라 부르고, 하속동에는 윤씨가 많이 거주하여 윤촌(尹村)이라고 하였다. 장장 12㎞에 이르는 긴 계곡에는 아름다운 8경이 있다.

[명칭 유래]

속곡(粟谷)이란 지명에 대해서는 마을의 위치가 깊은 골짜기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속골’, ‘속동’, ‘속곡’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고, 또 논이 없어 밭을 개간하여 조[粟]를 많이 재배하였으므로 ‘속곡’ 또는 ‘속실’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북면 속곡리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영덕군 지품면 속곡동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17세기 초에 옥산장씨가 들어와 하속곡을 개척하고, 뒤이어 임씨가 상속곡을 개척한 뒤 평산신씨, 파평윤씨, 김씨, 차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평산신씨로 이 마을에 처음 입촌한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신홍제(申弘濟)[1534~?]가 마을을 개척했다는 설, 신홍제의 손자인 신종망이 속곡의 입촌조라는 설, 신종망의 현손인 신문식(申文栻)이 1702년경에 마을을 개척했다는 설 등이다. 평산신씨 문중에서는 신종망이 입향조라 주장하고 있다. 신종망은 영덕군 입향조 신득청(申得淸)[1332~1392]의 10세손이며, 영덕읍 구미리에 정착한 신희(申禧)[1426~1526]의 7세손이다.

[현황]

1992년의 자료에 의하면 속곡리에는 총 52가구 중 평산신씨가 23가구, 연안차씨 11가구, 파평윤씨 10가구, 기타 성씨 8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2011년에는 가구 수가 많이 줄어 총 16가구 중 평산신씨 4가구, 연안차씨 4가구, 김녕김씨 2가구, 기타 6성씨 각 1가구로 집성촌으로서의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