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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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顯習 |
영어공식명칭 | Kim Hyunseu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김현습(金顯習)[1887~1963]은 1887년(고종 24) 지금의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태어났다. 한말 정미의병 시기 정해창(鄭海昌) 의진에 가담하여 영월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 당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정해창은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중군장을 맡아 충청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고, 이강년이 체포된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구성하여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현습은 정해창 의진에서 선봉장을 맡고 있던 김자흥(金子興)의 휘하에 들어가 포군 또는 담군(擔軍)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김현습은 수십 명의 의병들과 함께 부대를 형성하여 총기 등으로 무장하고 영월군 각지를 다니며 의병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김현습은 1908년 9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현습은 1963년 4월 2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현습의 공적을 기려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