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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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性一 |
영어공식명칭 | Na Sungil |
이칭/별칭 | 나경일(羅慶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52년 6월 4일 - 나성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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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1월 26일 - 나성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5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23년 3월 14일 - 나성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나성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구래리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
활동지 | 영월 - 강원도 영월군 |
활동지 | 단양 - 충청북도 단양군 |
활동지 |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나성일(羅性一)[1852~1923]은 1852년 6월 4일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나경일(羅慶一)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나성일도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나성일은 1907년 10월부터 11월경까지 영월을 비롯하여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안동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체포되어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형을 언도받았다. 나성일은 1923년 3월 1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나성일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