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87 |
---|---|
한자 | 嚴學洙 |
영어공식명칭 | Um Hakso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62년 - 엄학수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6월 23일 - 엄학수 박봉기 의진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8월 11일 - 엄학수 강원도 정선에서 의병 모집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9월 16일 - 엄학수 공주구재판소에서 태형 100도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엄학수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정양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
활동지 | 영월 - 강원도 영월군 |
활동지 | 정선 - 강원도 정선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엄학수(嚴學洙)[1862~?]는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이 시기 영월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엄학수도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엄학수는 1908년 6월 23일 김정식(金正植)의 권유로 박봉기 의진에 가담하였다. 엄학수는 8월 11일 강원도 정선에 거주하던 황순팔(黃順八)을 의병으로 끌어들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1908년 9월 16일 공주구재판소에서 태형(笞刑) 100도(度)를 언도받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엄학수의 공적을 기려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