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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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公瑞 |
영어공식명칭 | Lee Gongse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이공서(李公瑞)[1872~?]는 1872년 영월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이 시기 영월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이공서도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이공서는 1907년 9월 11일 영월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정병하(鄭丙夏) 의진에 가담하여 9월 16일 영월 서은(瑞隱)이라는 마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후 의병 항쟁을 이어 가던 이공서는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1909년 3월 1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이공서는 1909년 4월 26일 경성공소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9월 13일 형 집행 면제로 출소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공서의 공적을 기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