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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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時伯 |
영어공식명칭 | Kim Sibae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김시백(金時伯)[1887~1950]은 1887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정미의병기에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김시백도 김상태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곧 독립 의병 부대를 구성하였고, 영월 일대에서 엄성하(嚴聖河)·김시중(金時中) 의병 부대와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김시백은 강원도를 비롯하여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일대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1909년 6월에는 충청북도 충주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피신하다가 달래강에서 적병 2명을 사살하였다. 김시백은 이후 영동 방면으로 이동한 후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 감옥에서 10년간 옥고를 치렀다. 김시백은 1950년 1월 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시백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