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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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德俊 |
영어공식명칭 | Park Dukj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57년 - 박덕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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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1월 - 박덕준 영월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
출생지 | 김삿갓면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
활동지 | 영월 - 강원도 영월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박덕준(朴德俊)[1857~?]은 1857년(철종 8)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서 태어났다. 영월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이시응(李時應)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박덕준도 이시응 의병 부대에 들어가 의병 항쟁에 참여하였다.
박덕준은 1907년 11월 이시응의 지시를 받아 장서방(張書房)과 함께 영월군 상동면[현 영월읍] 연중리에 있던 김이근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으나, 김이근이 돈이 없어서 군자금으로 당목 2필을 거두었다. 박덕준은 이 일로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