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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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海潤 |
영어공식명칭 | Um Haeyo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엄해윤(嚴海潤)[1863~1909]은 1863년 강원도 영월군에서 태어났다. 의원(醫員)으로 일하던 중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다가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엄해윤은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침략 의도를 노골화하자 국권 회복 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하고 1906년 노응규(盧應奎) 의진에 가담하였다. 엄해윤은 노응규 의진 선봉장을 맡아 무기를 마련하고 군사들을 모집하여 맹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윽고 병력이 증강되자 군사를 파견하여 철도 등 적군의 군용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군의 척후병을 섬멸하였으며, 각처의 의병진과도 연락하며 서울 진격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1907년 1월 일본군의 간계에 속아 노응규를 비롯한 엄해윤·서은구(徐殷九) 등 의진의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었다. 엄해윤 등은 옥중에서뿐만 아니라 검사의 심문에도 강경한 태도와 답변으로 항일 토적(討賊)의 대의를 주장하며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의병장 노응규는 옥사하고 엄해윤 등은 유형(流刑) 7년형을 언도받아 황해도 장연군 백령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유배에서 풀려난 엄해윤은 1908년 다시 이은찬(李殷贊)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 항쟁을 재개하였다.
엄해윤은 이은찬 의진에서 참모로 활동하였으나, 이종협(李鍾協)의 1대가 이은찬 의진에서 분리 독립하자 이종협 의진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엄해윤은 1908년 12월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탈출하였으나, 1909년 4월 13일 다시 체포되어 11월 30일 교형을 받고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엄해윤의 공적을 기려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