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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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會 |
영어음역 | Matdopho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호 |
성격 | 사회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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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21년 5월 |
해체연도/일시 | 미상 |
설립자 | 김백평[초대 회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설립목적]
3·1운동 때에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생들은 여수향우회를 만들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의 후유증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하고 피신한 여수향우회 소속 학생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여수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잡고 돕자는 뜻으로 맞돕회를 만들었다.
[변천]
맞돕회는 일제강점기인 1921년 5월경에 조직된 청년 단체이다. 회장인 김백평(金百枰)이 중심이 되어 부녀자층을 대상으로 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노비문서를 불태우는 등 사회 개혁 운동을 펴는 한편,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을 펴기 위하여 여수청년회관을 건립하였다.
1921년 맞돕회의 조직 구성은 회장에 김백평, 총무에 이상호(李祥昊), 회원에 국금남, 김수옥, 김영숙, 김정옥, 곽우영, 박상래, 정수경, 정봉오, 한정태, 임정택, 김찬식, 이상회, 장재후, 박귀엽, 박충행, 최모방 등 상당히 많은 여수 지역 학생들이 활동한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맞돕회가 세운 여수청년회관은 민간인 손으로 세워진 보기 드문 예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2년 5월 31일 전라남도 여수시 등록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활동사항]
맞돕회는 2세들을 길러낼 어머니들의 위치를 특히 중요시하여, 계몽의 대상층을 처녀들과 젊은 부녀자 층으로 정하고 회비를 거두어서 학생들에게 공책, 연필, 지우개 등 학용품 일체를 제공해 가면서 학생을 모집했다. 따라서 50~60명의 많은 학생을 순식간에 모을 수 있었다.
교과 내용은 한글과 산수 등의 기본 교양 과목을 가르쳤으며, 「오너라 동무들아」, 「울 밑에선 봉선화」 등의 노래를 가르쳐 은연중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한편, 부녀자 생활 개선 운동을 추진하여 거추장스런 큰머리를 내려 장식을 버린 머리로 간소화시키고, 흰옷 대신에 색옷을 입게 하였으며, 지나친 내외법을 완화하여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였다. 또한, 부모들을 설득하여 자기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사르게 하고, 사민평등을 외치는 등 사회 개혁 운동에 솔선수범하였다.
맞돕회의 야학관 장소는 처음에 김백평의 사랑방을 빌렸으나, 일제강점기 경찰의 눈이 이곳에 쏠리자 김백평 집안의 반대로 군자동 홍살문 근처 어느 개인 집으로 옮겼다가 다시 종고산 밑 예배당으로 옮겼다. 맞돕회는 야학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교육 장소로 여수청년회관의 건립을 계획하였다.
당시 맞돕회는 현재의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 일대가 도시 계획에 따라 국유지를 매각하게 됨에 따라 이를 매수하여 여수청년회관 부지로 삼았다. 여수청년회관 부지는 원래 덕지(德池)라는 저수지로 조선시대 김영수 수사가 만든 전라좌수영의 방화수였고, 모좀들이라고 불렀던 부근 농지의 관계용수였다.
맞돕회 회원들은 손수 지게를 지고 수레를 끌어 몸으로 덕지를 메웠으며, 조선시대 좌수영의 좌청 건물로 당시 우체국으로 쓰고 있던 기와집을 뜯게 됨에 따라 이를 인수하여 건축자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년회원들을 동원하여 일반 주민을 상대로 성금을 모금하는 한편 스스로 부모에게 상속받은 전답을 팔아서 여수청년회관 건립 기금에 보탰다. 또한, 당시 여수 지역 재벌로 부각하고 있던 김영준의 희사는 청년회관 건립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를 인연으로 맞돕회 청년회관 건물은 한때 김영준의 소유였다가 여수 기자단을 거쳐 현재는 전라남도 여수시가 소유하고 있다.
맞돕회는 운동의 경비를 조달하고자 회원들의 성금을 바탕으로 이발소와 맞돕회 쌀가게를 경영하였는데, 마을마다 소속 회원들이 활동하여 장날이 되면 시골에서 나오는 쌀을 거의 맞돕회 쌀가게에서 사들였기에 상당히 붐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의와 평가]
맞돕회는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펼쳐진 항일 운동의 중심이 된 단체로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의 모든 경제적 이익의 독점과 물리적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여기에 맞서 회원들이 일치단결하여 투철한 애국정신으로 민족 계몽 운동을 폈던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