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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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aemyeol |
영어의미역 | Gaemyeol Village |
이칭/별칭 | 가마골,원부곡(元釜谷),만수동,안골,능안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우 |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자연마을.
[명칭유래]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 풍수로 보아 가마[釜]를 엎어 놓은 형국이어서 가마산[伏釜山]이라 하였으며, 후에 이곳에 취락이 형성되자 산 이름을 따서 가마골이라 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개멸[元釜谷]로 통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 북쪽 지역이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진 곳이라 하여 만수동(萬樹洞)이라 불렀고, 동쪽 지역이 골짜기 안에 위치한다 하여 안골, 또는 관찰사를 지낸 유석(柳碩)[1595~1655]의 묘가 능같이 크다 하여 능안이라 불렀다. 개멸이라고 하면 보통 능안을 지칭한다.
[형성 및 변천]
개멸은 진주유씨 누대의 세거지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와 정빈(貞嬪) 홍씨(洪氏)의 소생인 정정옹주(貞正翁主)[1595~1666]가 동갑인 유적과 혼인하기로 약정되었으나 12세 때 시아버지가 될 유시행(柳時行)이 세상을 떠나자 3년상을 치렀다.
유시행은 본래 선산인 충청북도 괴산군 몽촌에 예장을 치룰 계획이었으나 서울에서 3백 리 이상이나 되는 원거리인 데다가 왕가의 장지는 1백 리를 넘을 수 없다는 법도에 따라 개멸에 사패지를 하사받아 진주유씨의 세장지가 되면서 후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정정옹주가 14세 때, 뜻밖에 이번에는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3년상을 치른 후인 17세가 되어서야 혼인을 치렀다. 그러나 부군인 유적의 몸이 허약하여 25세 때 세상을 떠나자 정정옹주는 청상이 되었다.
개멸이 있는 부곡동은 조선시대에 안산군 군내면 부곡리와 신리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가 되었다.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의거하여 안산시 부곡동이 되었다. 2002년 11월 1일 안산시가 분구됨에 따라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이 되었다. 최근 들어 개멸에는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마을 모습이 많이 변하고 있다.
[현황]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옹기마을 동쪽에 위치한다. 개멸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서 10월 3일 사이에 길일을 택해 마을 뒷산인 곤우봉(昆牛峯)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유적으로는 안산시 향토유적 제12호인 유석 선생 묘 및 신도비, 조선시대 만권당이라 칭하던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4호 청문당(淸聞堂), 경기도 전통 종가인 경성당(竟成堂) 등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