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29 |
---|---|
한자 | 仍火面 |
영어의미역 | Inghwa-myeon |
이칭/별칭 | 인화면(仁化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조준호 |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관련기록]
잉화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내용]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면의 호적에 편입된 호(戶)가 274호이며, 인구는 남자가 550명이고 여자가 540명이었다. 『경기지』에 수록된 「안산군읍지」에 따르면 호구수가 축소되어 241호로 나타나고 있으나, 1900년에 편찬된 『안산군읍지』에서는 대폭 증가하여 396호로 기록되었고 인구도 남자가 877명, 여자가 717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변천]
1900년까지 안산 관련 읍지 등에 등장하던 잉화면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잉화면이 1906년(고종 43) 발표된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조정 건」에 나타나는 인화면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제정된 칙령에 따라 인화면에는 북곡리·능곡리·화정리·광곡리·와상리·와하리·고잔리·월피리(月陂里) 등 8개의 리가 속하게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 관할구역 및 부·군 명칭, 위치, 관할구역」에 의거하여 인화면은 군내면·초산면 등과 함께 시흥군 수암면으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