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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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處尹先生墓-墓碣 |
영어의미역 | The Grave and Memorial Stone of Hong Cheo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산 11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대광 |
성격 | 묘|묘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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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관련인물 | 홍처윤|홍명원|홍수기|홍수서 |
높이 | 180㎝[귀부]|110㎝[이수]|140㎝[비신]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산 112-2 |
문화재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3호 |
문화재 지정일 | 1991년 11월 2일 |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홍처윤의 묘와 묘갈.
[개설]
홍처윤(洪處尹)[1607~1663]의 자는 지임(之任), 호는 안분재(安分齋),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경기관찰사 홍명원(洪命元)의 아들로, 어머니는 부호군 윤민준(尹民俊)의 딸이다.1650년(효종 1)에는 응교로 춘추관 편수관이 되어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이해 지평이 되어 영의정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였다. 교리가 되어서는 당쟁의 무해함을 진술하다가 삭직되었으나, 곧 배천군수(白川郡守)로 기용되어 선정을 베푸니 군민이 합심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1663년 첨지중추부사·예조참의에 이르렀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위치]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초등학교 옆으로 난 길로 조그만 더 가면 산 중턱에 홍처윤 선생의 묘와 묘갈이 위치해 있다.
[변천]
홍처윤의 묘는 조선 후기 조성되었으나 정확한 건립 연도는 알 수 없고, 묘갈은 1697년(숙종 23)에 건립되었다.
[형태]
홍처윤의 묘는 아들 홍수기(洪受箕)·홍수서(洪受敍) 등의 무덤과 함께 있다. 홍처윤의 무덤은 그중 가장 위쪽에 있으며, 방향은 서남향이다. 무덤의 석물로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상석의 좌우에 망주석이 하나씩 서 있다. 묘역의 우측에는 행적비가 있고 좌측에는 묘갈이 있다.
묘갈은 귀부(龜趺)와 이수가 잘 남아 있는데 귀부의 높이는 180㎝, 너비는 110㎝, 두께는 60㎝로 균형 잡힌 몸매에 섬세하고 세련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수는 옥개석의 형태로 하단부에 용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윗부분은 보주형 꼭지에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높이는 110㎝, 너비는 90㎝, 두께는 50㎝이다. 비신의 높이는 140㎝, 너비는 56㎝, 두께는 33㎝이다.
[금석문]
묘갈의 비문은 민진장이 짓고, 홍우정이 글씨를 썼으며, 홍수주가 전액하였다.
[현황]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