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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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殷傅 |
영어음역 | Gim Eunbu |
이칭/별칭 | 안평공(安平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여성구 |
[정의]
고려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산(安山). 아버지는 안산김씨의 시조 김긍필(金兢弼, 金肯弼), 어머니는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 처는 소성백(邵城伯)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자녀로 병부상서 김충찬(金忠贊), 경덕국사(景德國師), 원성왕후(元成王后), 원혜왕후(元惠王后), 원평왕후(元平王后) 등 2남 3녀를 두었다.
[활동사항]
김은부는 수주 안산현[현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천성이 부지런하며 검소했다. 성종 때 견관승(甄官丞), 목종 때 어주사(御廚使)를 거쳐 현종 초에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1011년(현종 2) 1월에 거란군의 침입으로 피난길에 나선 왕이 공주에 들렀을 때, 예의를 갖추고 교외까지 나와 의복과 음식을 바치고 호종 관리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다시 파산역(巴山驛)에서 아전들의 도망으로 곤경에 처해 있던 왕을 위해 반찬을 장만하는 등 왕을 극진히 모셨다.
거란군이 물러나고 왕이 개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주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이때 맏딸에게 의복을 지어 바치게 하고 왕을 편안히 모시게 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인해 형부시랑으로 승진하였고, 세 딸이 모두 현종의 비가 되었다. 맏딸은 처음 연경원주(延慶院主)가 되었으며, 1018년(현종 9) 7월 정종을 낳은 뒤 궁주(宮主)가 되고 얼마 뒤에 정식으로 현종의 제3비인 원성왕후가 되었다. 뒤에 다시 두 딸 역시 왕비가 되었으니 각각 원혜왕후(元惠王后)와 원평왕후(元平王后)이다.
형부시랑으로 거란 성종(聖宗)의 생일 축하 사절로 파견되었으나 돌아오는 도중 내원성(來遠城)[압록강 검동도]에서 거란의 사주를 받은 여진에게 붙잡혀 억류되었다가 이듬해 10월 풀려나 고려로 돌아왔다. 1015년(현종 6) 지중추사(知中樞事)이 되었으며 1016년 호부상서가 되었다. 뒤이어 중추사상호군(中樞使上護軍)으로 재직하다가 1017년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김은부의 15세손 김처암(金處巖)이 지은 『안산세갈(安山世碣)』에는 김은부가 지은 「조천시(朝天詩)」가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송의 황제가 베푼 잔치자리의 성대함과 황제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시에 부기하여 「송주사연명부시(宋主賜宴命賦詩)」를 짓게 된 동기와 79세작이라는 제작 시기가 명기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안평(安平)이다. 사후인 1022년(현종 13) 9월 왕후들의 부친이라 하여 추충수절창국공신(推忠守節昌國功臣)의 칭호, 개부의동삼사수사공(開府儀同三司守司空)의 관직, 상주국(上柱國)의 훈위, 안산군개국후(安山郡開國侯)의 작위, 식읍(食邑) 1천 호를 추증하였으며, 처에게도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을 추증하였다.
1024년 김은부의 아버지 김긍필에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의 벼슬, 상주국의 훈위, 안산현개국후(安山縣開國侯)의 작위, 식읍 1,500호를 추증하였으며, 어머니에게도 안산군대부인을 추증하였다. 또 장인 이허겸에게 상서우복야의 벼슬, 상주국의 훈위, 소성현개국후(邵城縣開國侯)의 작위, 식읍 1,500호를 추증하였다. 1027년(현종 18) 9월 왕후가 살던 집이라 하여 김은부의 택호를 장경궁(長慶宮)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