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05 |
---|---|
한자 | 吳泰周 |
영어음역 | O Taeju |
이칭/별칭 | 도장(道長),취몽헌(醉夢軒),해창위(海昌尉),문효공(文孝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도장(道長), 호는 취몽헌(醉夢軒). 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 어머니는 상주황씨(尙州黃氏)로 부사를 지낸 황연(黃挻)의 딸이다.
[활동사항]
오태주는 1679년(숙종 5) 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와 혼인하여 해창위(海昌尉)에 봉해졌고 명덕대부(明德大夫)에 올랐다. 그 뒤 광덕대부(光德大夫)로 품계가 오르고 오위도총부도총관, 조지서제조(造紙署提調), 귀후서제조(歸厚署提調)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 희빈장씨(禧嬪張氏) 소생의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숙종과 남인에 대하여 노론의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하자 이에 찬동하여 책봉을 반대하는 의견을 아뢰어 일시 관작이 삭탈되었다가 얼마 뒤 왕명에 의하여 직첩이 환급되기도 하였다.
오태주는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예서(隸書)에 능하였다. 1712년 청나라의 사신이 국왕과 대신의 시가 담긴 병풍을 원하자 오태주가 서사(書寫)하였고 또 왕실의 옥책(玉冊), 신판(神板), 유지(幽誌) 등을 많이 썼다. 또한 시문에도 능하여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저술 및 작품]
전하는 묵적으로는 행서체로 쓴 간찰이 있고, 금석문으로 오두인석비(吳斗寅石碑)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