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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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命堅 |
영어음역 | Ryu Myeonggyeon |
이칭/별칭 | 류명견,백고(伯固),모산(茅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고(伯固), 호는 모산(茅山). 아버지는 사성(司成) 유영(柳潁),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윤신(李潤身)의 딸이고, 처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억(李億)의 딸이다. 동생이 이조판서를 지낸 유명천(柳命天)과 유명현(柳命賢)이다.
[활동사항]
유명견은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병과 6등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된 후 사간원정언을 지냈고, 1675년(숙종 1) 도당록(都堂錄)에 들었으며, 1677년 수찬이 되었다. 숙종 초년에 남인의 논의가 갈라졌을 때는 윤휴(尹鑴)와 대립하였다. 1680년 경주부윤 재임 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몰락할 때 파직당하였다.
1682년 남인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서인의 과격파인 우의정 김석주(金錫胄)와 어영대장 김익훈(金益勳)이 무고를 하여 투옥되었다가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1689년 전해에 태어난 희빈장씨(禧嬪張氏) 소생을 원자(元子)로 정하는 문제로 남인이 다시 집권하게 되자 승지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을 지냈다. 1692년 이조참판이 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남인이 실각하여 파직당하자 고향인 안산에서 은거하였다.
1701년 서인 김춘택(金春澤)의 사주를 받은 민언량(閔彦良)이 이우정(李宇鼎)의 집에서 장희재(張希載) 등과 유명견, 유명천, 유명현 삼형제가 인현왕후(仁顯王后)를 살해하려 했다고 무함(誣陷)을 하여 연행되었다. 대질 결과 사실 무근임이 밝혀졌으나 적당(賊黨)의 공초(供招)에 이름이 올랐다 하여 전라도 위도(蝟島)에 안치되었다가 1704년 풀려 나왔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