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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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土-粲- |
영어음역 | Yi Ch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진각 |
성격 | 자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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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
성별 | 남 |
생년 | 미상 |
몰년 | 미상 |
본관 | 경주 |
[정의]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자선가.
[개설]
이찬은 본관이 경주(慶州)로, 한말에서 1920년대 초까지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지역의 재산가로 이름을 떨쳤다.
[활동사항]
이찬은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생존해 있을 당시만 해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일원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 만큼 대지주였다. 대부분의 농토는 많은 소작인들에 의해 경작되었다. 이찬은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이 두터워 스스로 가난한 민중의 처지를 깊이 헤아렸고, 땅 일부는 경작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를 탕감해 주는 등 덕을 베풀었다.
[상훈과 추모]
이찬이 세상을 떠나자 은혜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거향적(擧鄕的)으로 장례를 치르고 생전의 고마운 마음씨와 뜻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이찬의 묘소에 자선비를 건립했다. 관리가 소홀해져 1980년 대부남동 산 85-17번지에 다시 세워졌다가, 2001년 6월 17일 대부도 시도 2호선 도로 공사로 대남초등학교 앞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