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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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山縣 |
영어공식명칭 | Asa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범 |
[정의]
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인주면, 음봉면, 염치읍, 둔포면 등에 있던 행정구역.
[개설]
아산현(牙山縣)은 고려 전기 인주(仁州)였다가 1172년경(명종 2) 아주현(牙州縣)으로 개칭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년) 아산현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23부(府)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홍주부(洪州府) 관할 아산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13도(道)제로 환원되면서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 아산군, 온양군, 신창군을 아산군으로 통폐합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아산현은 아산만과 연이어 있어 내륙 교통과 해양 교통이 만나는 요지였다. 또한 왜선(倭船)이 왕래하는 관문이었고 조세(租稅)를 수납하는 요충지였다. 따라서 아산 지역은 일찍부터 행정구역이 설치되어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여지도서』, 『호서읍지』, 『아산군지』 등에서 아산현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아산현은 홍주진관(洪州鎭官) 소속으로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현내면, 일서면, 이서면, 삼서면, 남면, 일동면, 이동면, 일북면, 이북면, 삼북면 등 10면 140리가 속해 있었다. 바다와 접해 있어 어업과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육운과 해운이 만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공진창(貢津倉)[공세곶창(貢稅串倉)] 외에도 동일창(東一倉), 남이창(南二倉), 서삼창(西三倉), 북사창(北四倉) 등 조창(漕倉)이 있었다.
[변천]
백제 이전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마한(馬韓)의 세력권 아래 있었다. 이후 백제시대 아술현(牙述縣)이 설치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음봉현(陰峰縣)[음잠현(陰岑縣)]이 되었다가, 고려 전기 ‘인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018년 인근의 천안부(天安府)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경 ‘아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감무가 파견되었다. 고려시대 아주에는 황촌부곡(黃村部曲)과 덕천향(德泉鄕) 등 특수 행정구역이 존재하였다.
1413년 아주가 아산현으로 개편되었으며 이 시기부터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아산현은 1459년(세조 5)부터 1465년(세조 11)까지 폐지되어 온양군, 신창군, 평택현에 나뉘어 소속되기도 하였으나 지역 인사들이 노력하여 1465년 다시 복현(復縣)되었다. 이후 1505년(연산군 11)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관할이 변경되었다가, 1506년(중종 원년) 다시 충청도로 환원되었다. 1896년(고종 33) 전국이 13도로 개편되어 충청남도 관할이 되었고, 1914년 아산군·온양군·신창군을 통폐합하여 아산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