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04 |
---|---|
한자 | 觀音寺石造如來佛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Standing Buddha of Gwaneumsa Temple |
이칭/별칭 | 관음사 석조여래입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122[아산리 668]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용윤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관음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
[개설]
관음사석조여래불상은 불상의 양식 및 조각기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관음사석조여래불상은 광배(光背)를 포함하여 3m가 넘는 큰 불상으로 관음사 경내에 있다. 큰 화강암 1매를 이용하여 불신(佛身)과 광배, 대좌(臺座)까지를 전부 조각하였다. 입자가 큰 재질이고 전체적으로 풍화로 인한 훼손이 심하여 세부 모습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불신은 광배 위로 양각하였다. 상호(相好)는 풍화가 심하나 지긋이 감은 눈과 뭉툭하고 넓은 코 등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온화한 인상을 평면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마에는 백호(白毫)의 흔적이 있으며, 둥근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와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을 표현하였다. 대의(大衣)는 편단우견(偏袒右肩)[왼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냄] 양식이지만 오른쪽 어깨 부분을 대의 자락이 덮고 있다. 상체 부분에는 선각으로 간략히 처리된 옷 주름이 보이나 하체 부분의 옷 주름은 풍화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쪽 발끝이 양옆을 향한 표현이 독특하며, 아래로 연화(蓮花)[연꽃] 대좌가 보인다. 수인(手印)[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을 살펴보면,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결인(結印)[불상이나 보살상이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려서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것]하여 가슴 아래로 들어 올렸으며 오른손은 자연스레 아래로 내렸는데 대의 자락을 쥐고 있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정면관(正面觀)을 염두에 둔 평면적 인상을 주고 측면에서의 부피나 입체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광배는 마모가 심하여 연화문(蓮花文)[연꽃무늬] 등 일부의 문양만을 확인할 수 있다.
[특징]
관음사석조여래불상처럼 한 손을 가슴 위로 들어 올리고 다른 손을 아래로 내린 모습은 고려시대의 석불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현재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983호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安城奉業寺址石造如來立像)이 대표적인 예이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忠州院坪里石造如來立像) 등도 유사한 도상(圖像)이다. 이러한 도상의 존명(尊名)을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당시 유행하였던 형상으로 보이며, 관음사석조여래불상의 경우 결인한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같은 계통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기법이나 양식 면에서는 선각으로 간략하게 처리한 옷 주름, 정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자세, 소박한 신체 비례의 표현 등에서 일정 부분 지방화된 고려 불상의 양식과 그 특징을 공유한다. 특히 양쪽 발끝이 옆으로 향하게 표현된 것은 다른 불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점이다.
[의의와 평가]
관음사석조여래불상은 충청남도 아산 지역 석조 불상의 경향과 흐름을 보여 준다. 넓게 내포(內浦) 지역으로 분류되는 아산시, 예산군, 홍성군, 당진시 등의 지역에는 다수의 고려시대 석불이 남아 있으며, 이는 당시 내포 지역에서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음을 알려 주는 사료로 주목된다. 관음사석조여래불상은 당시 널리 통용되었던 도상을 하고 있어 고려시대 석불의 일면을 보여 주며, 재료나 양식 등에서는 충청남도 지역에서 다수 제작된 석불들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방화된 고려시대 석불의 일례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