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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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鍾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5월 24일 - 신종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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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신종선 독립군자금 모금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7월 31일 - 신종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신종선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신종선(申鍾善)[1876~1936]은 충청남도 보령 청소면 출신으로 대동단(大同團) 조선지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신종선은 3·1운동 이후 비밀결사인 대동단(大同團) 조선지부에 관계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여기서 대동단은 ‘조선민족대동단’을 지칭하는데,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월 말 민족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민족의 정신 통일 및 실력 양성’을 표방하며 전협(全協), 최익환(崔益煥)[1889]~1959] 등이 서울에서 결성한 단체이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라도 일대에 지부를 설치하였으며, 김가진(金嘉鎭)[1846~1922]이 총재로 추대되었다.
신종선은 전국적으로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1919년 봄 서울 시내에서 신덕영(申德永)의 부탁으로 황대수(黃大洙)에게 대동단 통고문(通告文) 및 포고문(怖告文)을 받아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동단 활동을 지원하였다. 당시 중국 상하이에 망명한 대동단 총재 김가진은 통고문 및 포고문 등을 국내 운동에 보내고 있었다. 그 후 신종선은 1920년 음력 7월경 김병연(金秉璉)의 의뢰를 받아 대동단 조선지부장 신덕영에게서 봉투를 받아 그것을 김병연에게 건넸다. 그가 신덕영에게서 받은 봉투 안에는 대동단 총재 김가진 명의로 된 대동단 군자금 영수증 2통이 들어 있었다.
신종선이 건네 준 대동단 군자금 영수증은 다시 김두백(金枓白)에게 주어져 군자금 모집에 사용되었다. 또한 조선지부장 신덕영은 김가진의 통고문 6~7장을 전라남도 담양, 광주, 화순에 있는 5명에게 보내어 제2의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하던 신종선은 1921년 2월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 8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22년 1월 26일에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