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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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鼎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일제강점기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안정수(安鼎洙)[1879-1940]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03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에서 신민회(新民會), 공립협회(共立協會), 대동교육회(大同敎育會), 대동보국회(大東保國會),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등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항일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안정수는 1903년 8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홍승하(洪承夏)·윤병구(尹炳求)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1905년 9월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서기로 활동하였으며, 12월에는 대동교육회를 창립하였다. 1907년 3월 대동교육회를 대동보국회로 확대 개편하였으며, 7월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공제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1919년 4월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에서 한국의 독립을 전망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1920년 3월 뉴욕지방회 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 자격과 국민회’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1921년 10월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서 활동하였으며, 1924년 12월 뉴욕에서 뉴욕한인교민단을 조직하였다.
1935년 2월 3·1독립선언기념일 행사를 뉴욕 내 한인단체를 통합하여 치르기로 하고 뉴욕한인공동회를 조직하였다. 1938년 3월에 임시정부의 재정을 후원하기 위해 뉴욕 한인단체 재정 조사위원으로, 5월에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 실업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9월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위원회에서 시사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39년에 항일동맹단 단장으로 중국에서 항일전쟁을 전개하는 독립군의 후원금을 모집하였으며, 1940년 뉴욕지방회 구제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부터 1940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