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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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敬春 |
이칭/별칭 | 吳正敎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월치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개설]
오경춘(吳敬春)[1874~?]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출신으로 1908년 4월 오양선(吳良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1907년 고종(高宗)[1863~1907]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 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오양선 의병대는 1908년 8월 충청남도 보령의 순사주재소를 공격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홍주(洪州)·결성(結城)·보령·청양(靑陽) 일대에서 소규모 의병부대로 활동하였다.
오경춘은 1908년 초 충청남도 보령군 일대에서 오양선 의병대에 참여하여 신홍균(申洪均)·문봉춘(文奉春)·양치선(梁致先)·김희복(金喜卜) 등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각각 총기를 휴대하고 보령·부여(扶餘)·청양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8월 24일에는 오양선의 지휘에 따라 보령 순사주재소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