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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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保寧鄕校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향교말길 45[보령리 47-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사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1년 - 보령향교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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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 보령향교 대성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2월 23일 - 보령향교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보령향교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향교말길 45[보령리 47-1] |
성격 | 향교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대성전 ]|홑처마 맞배지붕[명륜당]|맞배지붕[동재]|맞배지붕/가섭지붕[서재]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 ]|3칸[명륜당]|5칸[동재|4칸[서재] |
측면 칸수 | 2칸[대성전 ]|2칸[명륜당]|2칸[동재]|2칸[서재]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70호[보령향교 대성전]|충청남도 기념물 138호[보령향교 일원]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관학 교육 기관.
[개설]
보령향교(保寧鄕校)는 조선 시대 보령현(保寧縣)에서 유현(儒賢)을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교육 기관이다.
[위치]
보령향교는 주포면에 있는 진당산 서남쪽 사면에 있다. 조선 시대 보령현 관아가 있었던 주포초등학교에서 동남쪽으로 약 700m 떨어져 있다.
[변천]
보령향교는 조선 태종(太宗)[재위: 1400~1418] 대 각 지방 군현에 향교들이 건립될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보령현(保寧縣)」조에 따르면 현(縣)의 동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1630년(인조 8년) 9월 23일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기록에 따르면 보령향교에 “공자(孔子), 증자(曾子), 맹자(孟子), 안유(安裕) 등 4위의 위판이 도둑맞고 불태워져서, 위판을 다시 만들고 위안제를 지내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1635년(인조 13) 조선 시대 예조(禮曹)에서 펴낸 『학교등록(學校謄錄)』의 1630년(인조 8) 9월 25일 기사[保寧鄕校位版偸燒之變]에도 확인된다. 향교 중수(重修)와 관련해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1895년 향교 문루 중수를 위해 재물을 모았다는 내용이 향교 소장 『강학계복설입의(講學契復設立議)』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1921년 전면적으로 중수하였는데, 이때의 기록이 1921년 작성된 「보령문묘중수기(保寧文廟重修記)」 현판과 「중수제성록(重修齊誠錄)」으로 남아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제향하고 있다.
[형태]
보령향교의 배치는 ‘남서-서북’ 축으로, 서북쪽으로 전망이 터져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면에 명륜당(明倫堂)을 두고, 후면에 대성전(大成殿)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식이다.
전면에는 삼문(三門)이 2개 있다. 향교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좌측의 삼문은 과거에 ‘외삼문(外三門)’ 현판이 걸려 있었으며, ‘명륜당-내삼문-대성전’으로 이어지는 주된 축이다. 오른쪽의 삼문은 좌측의 것보다 작은 규모로, 과거에 ‘수재문(修齋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삼문을 지나 마당에는 전면에 명륜당(明倫堂)이 있으며, 명륜당 전면 좌·우측에 각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동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이다. 동재와 마주보고 있는 서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과 가섭지붕이다. 동재 뒤편으로는 벽으로 구분된 독립 공간이 있다. 또한, ‘서재-명륜당-동재’과 내삼문(內三門) 사이에는 각각 벽으로 이어진 빈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향교배치에서 흔치 않은 구조로 특징적이다.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과 제기고(祭器庫)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로 풍판(風板)을 지닌 맞배지붕이다.
[현황]
보령향교는 대성전이 1984년 5월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바 있으나, 향교 일원 전체가 1997년 12월 23일에 충청남도 기념물 138호로 재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향교와 관련해 남아 있는 자료는 1864년에 작성된 『강학계입의절목(講學契立議節目)』, 1898년에 작성된 『강학계복설입의(講學契復設立議)』 등 강학계 자료와 1901년 『선생안(先生案)』, 『보령향교원액교생안(保寧鄕校院額校生案)』, 1921년 『청금록(靑衿錄)』 등의 유안(儒案) 자료, 그 밖에 1921년 작성된 「보령문묘중수기(保寧文廟重修記)」 현판(懸板)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보령향교는 건립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리되고 있어 지역사를 연구하는 향토자료로 보존과 활용 가치가 높다. 향교와 관련해 남아 있는 문서류와 현판류들은 대개 19세기 이후 자료로 보령향교와 지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