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170
한자 長信里
영어공식명칭 Jangsi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회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8.42㎢
가구수 433가구
인구[남/여] 720명[남 351명/여 369명]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장신(長信)마을은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긴 갯가 마을이라는 의미로 장신개 또는 장신포라고 불렀다. 조선 전기에 이곳에 잠시 수군의 군영이 있었다고 한다. 장신마을 남쪽에 자리한 장원마을은 긴 제방이 있어 ‘장언(長堰)’이라 하였는데 ‘장원(長元)’으로 고쳐 불렀다. 장신마을 동쪽의 복룡(伏龍)마을은 석불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 끝에 자리한 마을로, 지형이 풍수지리적으로 여의주를 얻지 못한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장신마을에 바짝 붙어 있는 농소(農所)마을은 복룡마을에 엎드려 있는 복룡의 수염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용수말(龍鬚-)이라고도 부른다. 수조(水釣)마을은 수양산 서쪽 기슭에 있는데 어부가 낚싯대를 드리운 형국이어서 ‘수조(垂釣)’라고 썼다가 언제부터인가 ‘드리울 수(垂)’를 ‘물 수(水)’ 자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국도 제30호선과 변산로 사이에 폭넓게 자리 잡은 등용마을은 용이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오르는 비룡상천(飛龍上天)의 풍수혈이 있어 ‘등용(登龍)’이라 불러야 하는데 일제가 쉬운 글자를 채택하여 ‘등용(登用)’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등용마을은 규모가 커짐에 따라 1983년 등용1리와 등용2리로 행정리가 분리되었다. 등용마을에서 국도 제30호선 건너편의 송림(松林)마을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뜻이며, 신성(新成)마을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석불산 서쪽 바다 가까이에 평지(平地)마을, 양지(陽地)마을, 불등(佛登)마을이 나란히 자리하는데, 이 세 마을은 원래 의복리의 자연 마을이었으나 1983년 의복리가 신설된 계화면에 편입될 때 장신리에 귀속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하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하서면의 복룡리, 농소리, 금광동, 마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하서면 장신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장신리는 동북쪽으로 석불산, 남쪽으로 수양산이 서 있고, 그 사이에 작고 낮은 산들이 여기저기 듬성듬성 자리한다. 예전에는 장신리의 서쪽으로 해안선이 길게 뻗어 있었지만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어 마을 앞 넓은 갯벌이 육지로 변하였다.

[현황]

장신리의 동쪽과 남쪽은 하서면청호리석상리, 백련리, 서쪽은 황해, 북쪽은 계화면 의복리와 접한다. 면적은 8.42㎢이며, 이 중 밭이 1.82㎢, 논 1.90㎢, 임야 3.44㎢ 등이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장신리·농소리·장원리·수조리·복용리·신성리·송림리·등용1리·등용2리·양지리·평지리·불등리의 12개 행정리에 433가구, 720명[남 351명/여 36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동서로 국도 제30호선이 지나가고, 변산로의 등용 삼거리에서 갈라져 나온 석불로가 장신리를 남북으로 관통한 후 계화도로 빠져나간다.

1967년 설립한 의복초등학교 장신분교가 1970년 장신초등학교로 승격하여 2019년 2월 제49회 졸업식까지 총 1,46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나 학생 수가 꾸준히 줄어들어 2020년 3월 백련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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