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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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古里烽燧 |
영어공식명칭 | The Beacon Signal Fire of Walgo-ri |
이칭/별칭 | 부안 월고리 봉화산 봉수,격포리 봉수,격상리 봉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산7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명일 |
현 소재지 | 월고리 봉수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산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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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연변 봉수 |
양식 | 석축 |
크기(높이,길이,둘레) | 30m[복원된 연대 둘레]|4.3m[복원된 연대 높이] |
면적 | 1,500㎡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봉화봉에 있는 조선 시대의 연변 봉수.
[개설]
월고리 봉수(月古里烽燧)는 조선 시대 5봉수로 중 순천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을 이어 주던 제5거 루트의 직봉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4, 부안현 월고리 봉수조에 “월고리 봉수는 현의 서쪽 75리[약 29.45㎞]에 있다. 남쪽으로 무장의 소응포산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점방산과 연결된다[月古里烽燧 在縣西七十五里 南應茂長所應浦山 北應占方山]”라고 나와 있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월고리 봉수는] 산내면 격포 봉화산에 있다. 원형이며 지름은 5간[약 9.09m]이다[山內 格浦 烽燧山 圓形 徑五間]”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건립 경위]
월고리 봉수가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과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여지도서(輿地圖書)』, 「동여도(東輿圖)」 등의 고지도에 그 현황과 위치가 비교적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로 보아 조선 시대 후기까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월고리 봉수는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산72번지, 격포항 남쪽에 우뚝 솟아 있는 봉화봉[174.2m]에 위치한다. 격포항 남쪽에 조성된 해넘이 공원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700m가량 오르면 봉화봉 정상부에 도착한다.
[형태]
면적은 1,500㎡이다. 1995년에 복원된 것으로 알려진 연대(煙臺)가 남아 있다. 복원 연대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3단으로 축조되어 있다. 규모는 가장 하단부 둘레가 30m, 중단부 둘레가 21.6m, 상단부 둘레가 5.7m이며, 전체 높이는 4.3m 내외이다. 한쪽 측벽에 상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복원 과정에서 학술적 고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 봉수대의 정확한 형태 및 규모는 알 수 없다.
[현황]
월고리 봉수가 위치한 봉화봉에 오르면, 남쪽의 고창 소응포 봉수(所應浦烽燧), 북쪽의 부안 점방산 봉수(扶安占方山烽燧)와 계화리 봉수(界火里烽燧) 등 대응 봉수가 한눈에 조망되며, 서쪽으로 서해가 넓게 펼쳐져 있어 그 경관이 빼어나다. 봉화봉 정상부에는 봉수의 기초부로 추정되는 장타원형의 대지가 남아 있는데, 해넘이 공원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훼손이 이루어졌다. 대지의 규모는 남북 길이가 150m, 동서 폭이 40m 내외이며, 곳곳에 봉수대의 축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산재되어 있다. 또한 정상부 남쪽에는 1995년에 복원된 봉수의 연대가 위치한다.
[의의와 평가]
월고리 봉수는 서해 연안을 감시·방어할 목적으로 운영된 연변 봉수로서, 근대 이전의 해안 방어 체계 및 통신 체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현재 복원된 연대를 제외하고는 봉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상 구조물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 터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시굴 또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봉수의 구조와 운영 시기 등에 대한 단서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