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61
한자 蝟島官衙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안길14-4[진리 155]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장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8월 30일연표보기 - 위도 관아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1호 지정
현 소재지 위도 관아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안길14-4[진리 155]지도보기
성격 관아 건물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부안군
관리자 부안군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1호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개설]

관아(官衙)란 조선 시대 때 관원들이 공무를 보던 건물로, 각 도(道)·군(郡)·현(縣) 등의 수령이 있는 고을과 기타 관원이 파견되는 지역에 있었다. 한양 도성 내의 관아는 사적 공간이 없었지만 지방 관아에는 수령이 사무를 보는 동헌(東軒)과 사적 공간인 내아(內衙)가 함께 있었다.

[위치]

위도 관아(蝟島官衙)는 부안군 위도면 진리안길14-4[진리 155번지 진리마을]에 있다. 위도면 사무소 북쪽에 위치한다.

[변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1419년(세종 1) 8월 11일에 경기좌도(京畿左道)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이각(李恪)이 “이제 이미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배를 짓게 하였으니,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서도 병선을 더 지어서 좌우령(左右領)으로 나누어 두었다가, 경보가 있으면 한 영(領)은 항상 해변 둘레를 지키고, 한 영은 요충되는 땅인 경기도의 덕적도(德積島), 황해도의 백령도(白翎島), 평안도의 목미도(木彌島), 충청도의 연도(烟島), 전라도의 위도(猬島), 경상도의 거제도 같은 여러 섬을 비밀히 지키다가, 혹시 땔나무를 채취하거나 물을 긷는 적군을 만나게 되면, 불의에 뛰어나가 기회를 타서 돌격하면, 왜구가 도망가고 굴복하여 감히 근접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왜구의 침입이 있게 되면 위도 등지에 군사를 파견하였다가 왜구를 공격하자고 건의하는 대목이다. 상시 진을 설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위도가 중요시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위도진(蝟島鎭)은 1682년(숙종 8)에 설치한 수군 진영이다. 전라도 우수영(右水營)의 관할 구역이 너무 방대하였으므로 위도에 수군 진영을 두어, 가리포(加里浦)·임치(臨淄)·고군산(古群山)·다경포(多慶浦)·법성포(法聖浦)·검모포(黔毛浦)·군산포·지도 등을 속하게 하였다. 위도진에는 종3품의 첨사 아래 53명의 수군이 근무하고 있었다.

『1872년 지방지도』[규장각 소장]에 관아 건물이 그려져 있다. 이때 건물로 전면에 홍살문이 있고, 홍살문을 지나면 첫 번째 건물군이 있다. 중앙에 문이 있고, 왼쪽에 이청(吏廳)이, 오른쪽에 사령청(使令廳)이 있다. 이 건물군을 지나면 공간이 있는데, 마당의 서쪽으로 교청(校廳)이 있다. 교청을 지나면 아사(衙舍)와 창고(倉庫), 객사(客舍) 건물이 있고, 그 뒤쪽으로 군기(軍器) 건물이 있다. 현재는 이들 건물군 중 아사 건물만 남아 있다.

[형태]

동헌만 남아 있어 본래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세워졌는데, 우리 나라 도서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관아 건물 중 문화재로 지정되어 가장 양호하게 보존 관리되고 있다. 정면에 1칸의 문이 있으며, 사방은 야트막한 돌담으로 둘렀다. 건물은 마당보다 약간 높게 토대를 구성하고, 자연석으로 된 덤벙 주초 위에 기둥을 올렸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1층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중앙의 3칸은 대청 형태로 되어 있고 좌우 양쪽에 방을 만들었다. 방은 정면으로 문을 내었고, 대청으로 향하는 곳에도 문을 만들었다. 대청의 뒷면에도 나무 문을 만들었다. 건물의 앞에는 우물이 있고 비석들이 서 있다.

[현황]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서쪽으로 14㎞ 떨어진 위도는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섬의 모양이 마치 고슴도치와 비슷하여 고슴도치 위(蝟) 자를 써서 ‘위도’라고 불린다. 당시의 진관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동헌만 남아 있으나, 대부분 개축되어 본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동헌 앞의 느티나무는 신축 당시에 심은 것으로 부안군에서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또 다른 건물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시굴[발굴] 조사가 추진되었으면 한다. 위도 관아는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위도는 여러 갈래 바닷길이 경유하던 해상 교통의 주요 기항지였다. 1123년(인종 1) 송나라 사신단 국신사 외교 견문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고섬섬 조에 “5일 병술일에 날씨는 청명하였다. 고섬섬을 지나가는데 죽도에서 멀지 않았다. 산들은 모두 엇비슷하였고 주민들도 있었다. 고려에서는 찌를 듯한 고슴도치 털의 모양을 고섬섬이라 한다. 이 산의 나무들이 무성하나 크지 않아 바로 고슴도치 털 같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이날 이 섬에 정박하자 고려 사람들이 배에 물을 싣고 와 바치므로 쌀로 사례하였다. 동풍이 크게 불어서 전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여기서 묵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향후 한중 해양 교류와 위도 해양 문화의 역동성을 위도 관아와 연계하여, 해양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미래 전략이 모색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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