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직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99
한자 金直孫
영어공식명칭 Gim Jikson
이칭/별칭 자윤(子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37년연표보기 - 김직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63년 - 김직손 생원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김직손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김직손 예문관 검열 제수
몰년 시기/일시 1493년연표보기 - 김직손 사망
출생지 김직손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임|활동지 김직손 부임지 - 충청남도 서천군
사당|배향지 김직손 신도비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357-2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부안(扶安)
대표 관직 사도시 첨정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가계]

김직손(金直孫)[1437~1493]의 본관은 부안이며, 자는 자윤(子胤)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광서(金光敍)이고, 할아버지는 김당(金壋)이며, 아버지는 사온서 직장(司醞署直長) 김회윤(金懷允), 어머니는 송광선(宋光善)의 딸 연안 송씨(延安宋氏)이다. 부인은 윤등준(尹登俊)의 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아들로 김석옥(金錫沃)과 김석홍(金錫弘)을 두었다.

[활동 사항]

김직손은 1463년(세조 9)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469년(예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제수되었다.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여 당직사관(當直史官)으로 활동하였다. 1472년(성종 3)에는 왕명으로 각사(各司)의 비위를 조사·적발하였다. 사부 학당(四部學堂)의 교수(敎授)가 되어 교육 진흥에 힘썼다. 1481년(성종 12)에는 화순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중학 유생(中學儒生)[중학은 사부 학당 중의 한 곳임] 권이형(權以衡) 등이 김직손을 사부 학당 교수로 유임시켜 달라는 상소를 조정에 올려 교수에 유임될 정도로 학문이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직손은 정언(正言)이 되어서는 유자광(柳子光)의 직첩을 환수할 것을 주장하였고, 안중좌(安仲座)·홍이로(洪利老) 등의 부당한 임명에 서경(暑經)[관리의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 등에 있어 대간의 서명을 거치는 제도]을 거부하였다. 그 뒤 외직으로 나가 한산군수(韓山郡守)로서 선정을 폈고, 다시 내직으로 옮겨 사도시 첨정(司導寺僉正)이 되었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성품이 청렴 강직하고 사치를 싫어하기로 소문이 나서 읍리(邑吏)들이 김직손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357-2에 율곡 이이가 짓고 김수형이 쓴 김직손 신도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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