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병국(姜秉國)[1915~1984]은 1915년 10월 11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1930년 1월 부여에서 강일(姜日)[강성구(姜星求)]·강성모(姜聖模) 등과 함께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학생들에게 함께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보통학교 중퇴 후에는 문맹 퇴치 운동에 나섰고, 1933년...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성모(姜聖模)[1915~1940]는 1915년 11월 19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부여에서 강일(姜日)[강성구(姜星求)]·강병국(姜秉國) 등과 함께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학생들에게 함께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후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문맹 퇴치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33년 4월부터...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명우(盧命愚)[1915~1972]는 1915년 5월 6일 태어났다. 본적은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이다. 1931년 1월 15일 홍산면에서 유기섭(柳基燮)·장창선(張昌善)·오기영(吳祺泳)·이원인(李原人) 등 19명과 함께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를 조직하였다. 1931년 봄 이호철(李戶喆)·장창선(張昌善)·유기섭·오기영 등과 함께 농민 조합 조직에 착...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명우(盧明愚)[1897~1936]는 1897년 8월 5일 출생했고 본적은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이다. 공주 영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전단 1,000여 매를 인쇄하였고, 유준석(柳俊錫)과 함께 각자 전단 100매씩을 지니고 있다가 4월 1일 공주시장에서 살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8월 29일 공...
1930년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진행한 운동. 1930년대 부여 지역의 농민조합 결성은 1920년대의 세계 정세 변화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시작은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으로 쌀값이 폭락하면서 조선 농민의 경제는 파탄 국면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지속된 일제의 수탈과 조선인 농민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 그리고 조선공산당의 해...
일제 강점기 부여 지역에서 사회주의 계열 혁신 청년들이 검거된 사건.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扶餘共産主義者協議會事件)은 1933년 9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사회주의 세력 청년들이 대거 검거된 사건이다.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의 발단이 된 공산주의자협의회는 사유 재산 제도 부정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표로 조직된 비합법적 비밀결사였다....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철(曺秉哲)[1908~1950]은 1908년 2월 14일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태어났다. 1931년 봄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命愚)·유기섭(柳基燮)·장창선(張昌善)·오기영(吳麒泳) 등과 함께 사회주의 보급 및 항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홍산면에서 농민조합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취체가 심하여 농민조합 조직은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