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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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泗沘城 陷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660년 7월 13일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략하여 함락한 사건.
[역사적 배경]
백제는 의자왕 대에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의자왕 2년인 642년 7월에는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았으며, 8월에는 대야성을 공략하여 함락하고, 성주 품석과 품석의 아내와 자식을 베었다. 648년에는 요거성 등 10여 성을 차지하였고, 649년에는 석토성 등 7개 성을 공략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하여 옛 가야의 영역을 대부분 차지하였다. 이에 신라는 위기를 느껴 당나라와 군사적 동맹을 맺고,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하게 되었다.
[경과]
660년 7월 12일 나당 연합군은 사비성의 남쪽 30리[약 12㎞] 지점에서 만나 함께 백제의 도성으로 진격하였다. 백제군은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막았으나 수세에 몰렸으며, 나당 연합군은 기세를 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백제 왕자와 여러 신하가 다양한 방법으로 당군의 철수를 요청하였지만 모두 거절당하였다. 이에 의자왕은 7월 13일 웅진성으로 피신하였고, 둘째 아들 태가 스스로 왕이 되어 도성을 지켰다.
[결과]
의자왕이 웅진성으로 피신하고 태가 왕이 되어 도성을 지키자 태자의 아들 문사가 왕자 융에게 작은아버지 태가 임의로 왕이 되어 후환이 있을 것을 걱정하였다. 이에 융은 측근들과 함께 성 밖으로 나갔으며, 많은 백성들이 융을 따랐다. 마침내 나당 연합군은 성벽을 넘어 당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니 왕자 태도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함으로써 사비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사비도성이 함락되자 웅진성으로 피신하였던 의자왕도 660년 7월 18일 사비성으로 돌아와 항복하였다. 의자왕의 항복과 함께 백제의 운명도 종말을 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