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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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山刻書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6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00년 - 부산각서석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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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월 8일 - 부산각서석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산각서석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부산각서석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부산각서석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672 |
성격 | 석각 |
관련 인물 | 이경여|송시열|이이명|이민서 |
소유자 | 국가 |
관리자 | 부여군유림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여의 의지를 새긴 바위.
[개설]
부산각서석(浮山刻書石)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백마강변 암벽에 글자를 새긴 바위이다. 조선 후기 문신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의지를 기리고자 새긴 것이다. 글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썼으며, 이경여의 손자 이이명(李頤命)[1658~1772]이 글을 바위에 새긴 후 건물을 세웠다. 부산각서석은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건립 경위]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는 1657년(효종 8)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북벌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 효종이 비답을 내렸는데 “진실로 지극히 애통한 마음이 있지만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誠以至痛在心, 有日暮途遠之意故也]”는 구절이 있었다. 이후 송시열이 이경여의 뜻을 기리면서 이경여의 아들 이민서(李敏敍)에게 비답의 일부 구절인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의 8자를 써서 전하였다. 1700년(숙종 26) 이경여의 손자 이이명이 백마강변 암벽에 8자를 새기고 대재각(大哉閣)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위치]
부산각서석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672번지에 있다. 백마강 서안의 부산(浮山) 동쪽에 있으며, 대재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형태]
부산각서석은 자연 암반에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 8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오른쪽 위에는 효종이 백강 이상국(李相國)에게 내린 비사(批辭)라는 뜻의 ‘효종대왕사백강이상국비사(孝宗大王賜白江李相國批辭)’가 새겨져 있고, 왼쪽 아래에는 원래의 비사에서는 상국을 대인 선생이라고 일컬었다는 뜻의 ‘신송시열감배수계수근서 원비칭상국이대인선생(臣宋時烈敢拜手稽首謹書 原批稱相國以大人先生)’이라는 글씨가 작게 새겨져 있다. 부산각서석이 있는 대재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경사진 자연 암반을 정리하고 세웠다.
[의의와 평가]
부산각서석은 부여 지역에 낙향하여 북벌의 뜻을 이어 간 이경여의 의지를 기리는 유적이다. 조선 후기 북벌 의식의 계승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금석문 자료로도 가치가 있으며, 관련 내용을 사료에서도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