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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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扶蘇山城 |
영어공식명칭 | Busosanseong Fortress, Buy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최병화 |
조성|건립 시기/일시 | 538년경 - 부여 부소산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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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부여 부소산성 사적 제5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부소산성 사적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부여 부소산성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 일대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
소유자 | 부여군 등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와 쌍북리 경계 부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개설]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왕성에 해당하는 핵심 유적이며, 백제 멸망 이후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테뫼식 산성으로 변화되면서 증·개축 되어 왔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성왕 때인 538년(성왕 16)을 전후하여 수도를 충청남도 공주 지역인 웅진에서 부여 지역인 사비로 옮기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부여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번지 일대에 있다. 부여읍 시가지의 북단에 높게 솟아 있는 부소산 정상부에 있다.
[형태]
부소산은 북쪽[높이 107m]과 남쪽[높이 96m] 두 개의 봉우리가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고 사이에는 긴 계곡부가 형성되어 있다. 부여 부소산성은 정상부와 곡부를 감싸면서 축성되었고, 현재까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축성된 불규칙한 형태의 4개 산성이 존재한다. 부여 부소산성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18차례 이상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 산성은 봉우리와 곡부를 감싼 전체 둘레 약 2,400m의 포곡식 산성이다. 축성은 토축 성벽으로 판축 공법이 사용되었다. 성벽은 수직을 이루는 내외벽이 지면에 높게 돌출된 협축 구조이고, 성내에는 약 2m의 거리에 내벽면을 따라 조성된 석축 배수로가 길게 확인된다. 성벽의 규모는 너비 약 5m, 잔존 높이 최대 4.4m 정도이다. 일부 성벽 내외벽면에서는 기와 파편을 촘촘히 덧대어 타일 바르듯이 붙인 후 점토를 덧대어 처리한 특이한 기법이 확인된다. 이후 성벽은 내외벽에 다듬은 성돌 한 겹을 덧붙여 사용하였다. 삼국 통일 이후에는 기존 성벽 전체를 두껍게 흙다짐하여 개축한 것으로 확인되어, 백제 멸망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문지는 남문과 동문이 조사되었는데 남문지는 계단의 진입 시설과 문루 추정의 초석 및 적심이 확인되었다. 치는 남벽, 동벽, 북벽 등 각 1기씩 총 3곳이 확인된다. 성내 시설은 굴립 및 벽주 건물지, 수혈, 방형의 석축 연못, 원형 석축 저수조, 우물 등 다수의 생활유구와 북사명 토기, 대통명 인장와 외 다량의 중요 유물이 수습되었다.
둘째, 통일 신라 산성은 서쪽의 사자루 주변 정상부를 둘러싼 둘레 약 790m의 테뫼식 산성과 남쪽 봉우리와 경사면을 둘러싼 둘레 약 1,570m의 테뫼식 산성 등 2곳이 있다. 서쪽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은 북쪽으로 백제 토성벽과 접하고, 남쪽은 통일 신라 시대 테뫼식 석축 성벽이 연결된다. 축성은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굴착 후, 편축식으로 외벽과 뒤채움석을 쌓았다. 외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사용하여 수평하게 맞추었다. 초축 이후 외벽으로 벽석을 한 겹 덧대어 증·개축한 현황도 확인된다. 남쪽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은 남쪽은 백제 포곡식 토성벽과 접하고, 북쪽은 통일 신라 시대 테뫼식 성벽이 연결된다. 축성은 성벽 하부 일부를 석축하여 기단을 조성하고, 상면부터 토축한 기단석축 토성벽으로 파악된다. 성벽 조성층 내에서는 ‘회창 7년(847)’ 명문와가 출토되어 적어도 9세기 중반 이후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조선 산성은 동남쪽 평탄지에 있는 군창지를 둘러싼 약 825m의 테뫼식 산성이다. 동쪽·북쪽·남쪽 성벽은 기존의 통일 신라 성벽선을 유지하면서 서쪽만 새롭게 쌓은 것이다. 즉 군창지를 중심으로 서쪽 경사면 중상단부에 성벽을 축성하여 기존 통일 신라 성벽을 축소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부여 부소산성은 성과 곽이 조합된 백제 사비도성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다. 앞으로 체계적인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벽, 문지, 치 등과 함께 성내 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백제만의 독특한 왕성 모습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