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36 |
---|---|
한자 | 扶餘 金剛寺址 |
영어공식명칭 | Geumgangsa Temple Site, Buyeo |
이칭/별칭 | 금공리 사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 13-1 외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
집필자 | 홍보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4년· - 부여 금강사지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9년 - 부여 금강사지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9월 29일 - 부여 금강사지 사적 제435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5년 - 부여 금강사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 부여 금강사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실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금강사지 사적으로 변경 지정 |
소재지 | 부여 금강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 13-1 외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34,933㎡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개설]
부여 금강사지(扶餘 金剛寺址)는 1964년과 1969년에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2015년과 2016년도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1964년도 조사에서 목탑지·금당지·강당지·행랑지·남회랑지가 확인되었고, 1966년도 조사에서 중문지·서승방지·북승방지가 확인되었다. 2015년과 2016년도 조사에서는 남승방지와 석축, 통일 신라 시대의 석축·수혈·담장 등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기·통일 신라·고려에 이르기까지의 토기·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부여 금강사지는 백제 사비 시기에 1탑 1금당식으로 조성되었고,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까지 운영되었다. 부여 금강사지는 2001년 9월 29일 사적 제43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지정 면적은 34,933㎡이다.
[변천]
부여 금강사지는 1934년에 펴낸 『부여 고적 명승 안내』에 금공리 사지로 처음 보고되었다. 이후 1969년 국립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금강사명(金剛寺銘) 기와가 발견되어 금강사로 불리게 되었다.
[위치]
부여 금강사지는 부소산성에서 서쪽으로 약 8㎞ 떨어졌고, 금강으로 유입하는 금강천의 남안에 있다.
[형태]
중문지는 남북 약 13.3m, 동서 약 10.6m의 규모로 추정되며, 서편에서 중문지의 마지막 기단 흔적으로 추정되는 잡석의 석렬이 확인되었다. 목탑지는 심초부까지 확인되었으며, 잡석으로 채워진 3차 기단과 계단지가 확인되었다. 심초부는 풍화 암반을 깎아 원형으로 만들었으며, 사리구들은 출토되지 않았다. 창건 목탑지의 기단은 한 변 길이 약 14.2m의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금당지는 창건 금당이 소실되고, 이후 용도 불명의 건물이 세워졌다가 폐기 후 재건 금당이 조성되었지만 고려 시대에 소실되었다. 창건 금당의 규모는 길이 약 19.3m, 너비 약 22.4m이고, 재건 금당의 규모는 길이 약 19.1m, 너비 약 13.9m이다. 강당지는 중앙과 좌우 측면만 조사가 되어 전체적인 구조는 알 수 없다. 기단석이 빠진 흔적 등을 통하여 규모는 길이 약 45.5m, 너비 약 19.1m로 추정되었다. 회랑지는 일부 구간이 확인되었는데, 서회랑지는 너비가 약 4.7m, 남회랑지는 너비가 약 5.9m이다. 회랑지 외곽의 동쪽·서쪽·북쪽에 승방지가 확인되었고, 강당지와 서승방지 사이에서 행랑지가 확인되었다.
[특징]
부여 금강사지는 자연 경사지에 성토하여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고, 각종 시설을 설치하였다. 부여 금강사지는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동서 축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었으며, 그 외곽을 회랑이 감싸고, 회랑의 동쪽·서쪽·북쪽 바깥에 승방이 배치된 가람 구조를 보인다.
[의의와 평가]
부여 금강사지는 백제 사비 시기에 초창되어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시대까지 운영된 불교 사찰이다.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발굴 조사에서 금강사명 기와가 출토되어 사명(寺名)이 확인되었고, 도성 외곽에 있어 당시 도성 교외의 범위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