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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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金岩里一烈二孝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길[금암리 745-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정용 |
건립 시기/일시 | 1885년 - 마산 금암리 일열이효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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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마산 금암리 일열이효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길[금암리 745-1]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김재선(金在善)의 처 월성 이씨(月城李氏)와 아들, 며느리 등 3인 |
크기(높이,너비,두께) | 161㎝[높이]|60㎝[너비]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에 있는 비석.
[개설]
금암리에 있는 일열이효비(一烈二孝碑)의 비명(碑名)은 ‘김해 김씨 일열이효 유적비(金海金氏一烈二孝遺蹟碑)’이다. 이 비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재선(金在善)의 부인 월성 이씨(月城李氏)와 그의 아들 김화습(金華槢), 며느리 회산 구씨(檜山具氏) 등 3인의 효열(孝烈)을 기리는 비석이다.
김재선의 부인 월성 이씨는 나무하러 산으로 올라간 남편이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찾아 험한 밤길을 마다않고 찾아나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남편을 찾아 돌아왔다고 한다. 남편 김재선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부인이 직접 나무를 하고 품을 팔면서 남편의 병구완을 하여 천수를 누리게 하였고 아들을 키워 냈다고 한다.
아들인 김화습 또한 성장하여 어머니가 남편을 섬기는 정성을 배우고 따랐다. 어머니가 병들어 눕자 피를 흘려 어머니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상을 당하여는 예의 범절에 어긋남이 없이 하였다. 김화습의 처 역시 그의 시어머니와 남편 김화습을 정성과 공경으로 대하니 마을 사람들이 감화 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지역의 유림들이 1885년에 나라에 이 사실을 알리고 천거하여 김화습에게는 동몽교관(童蒙敎官)의 벼슬을 내리고 세 사람의 열행과 효행을 기리는 일열이효의 정려(旌閭)를 내렸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에 진전면 금암리에 살았던 김재선 처 월성 이씨와 아들, 며느리 등 3인의 효성과 행실을 나라에서 표창하여 효열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위치]
창원시 진전면 금암리 745-1로 상촌 마을의 금암리~고사리 간 도로변에 위치한다.
[형태]
일열이효비는 비신(碑身)과 비개(碑蓋)를 갖춘 형태이다. 비신(碑身)의 크기는 높이 161㎝, 폭이 60㎝이다. 정려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현황]
비석은 비교적 평평한 지형의 도로변에 소재하고 있는데 비석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담장 등을 축조하지 않은 개방형이다. 비석의 주변으로는 야생 잡풀들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