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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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丑入學圖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14일 - 정축입학도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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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축입학도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정축입학도첩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출토|발견지 |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
성격 | 필사본 |
소유자 | 한마 학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시대 왕세자의 교육과 관련된 의궤(儀軌).
[개설]
『정축입학도첩(丁丑入學圖帖)』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정축입학도첩도 그 중 1종이다. 2010년 10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효명세자(孝明世子)[1809~1830]는 조선 제23대 왕인 순조 임금과 순원왕후(純元王后) 사이에서 태어나, 4살이 되던 1812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는 19살이 되던 1827년 2월 18일부터 1830년 5월 6일,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할 때까지 순조 임금을 대신하여 정사를 맡아 보았다.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맡았던 3여 년 동안에 그는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보이며, 안동 김씨 세도 세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였다. 그는 정조대왕의 정치사상을 계승하여 청의(淸議)를 표방하고 엄정의리론(嚴正義理論)을 펼쳐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행함으로써 대리청정 말엽에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악화되었던 민심을 거의 수습하였다.
효명세자는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고 뛰어났으며, 특히 춤을 좋아하여 유명무실해진 궁중무용[呈才]을 정비하였으며 궁중무용을 적절하게 이용해 유교의 근본인 예악(禮樂)을 중시하는 덕망 있는 군주의 존재를 널리 알려 세도정치를 억제하고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사후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
[형태 및 구성]
정축입학도첩은 1첩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는 39㎝×26㎝이다.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첩에는 왕세자의 입학과 관련한 의식을 그림으로 그린 ‘반차도(班次圖)’ 6점과 그 의식에 관한 절차, 의식에 참여하였던 좌빈객(左賓客) 이만수(李晩秀)[1752~1820]와 우빈객(右賓客) 남공철(南公轍)[1760~1840] 등 13인의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소속 관리들이 춘(春)·신(新)·인(人)·신(宸) 네 글자를 운(韻)으로 삼아 지은 하시(賀詩)인 오언율시(五言律詩) 13편과 「정축입학도첩」을 만들고 소장하게 된 내용을 기록한 홍경모(洪敬謨)[1774~1851] 서문(序文)이 실려 있다. 모두 34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정축입학도첩은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9살이 되어 ‘세자시강원’에 입학한 것을 축하하여 제작한 의궤이다. 조선 시대에 세자는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왕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세자시강원’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태조(太祖) 임금으로부터 순종(純宗) 임금까지 조선 시대의 국왕은 27대가 있었고 세자[세제와 세손 포함]는 적어도 26인이 있었다. 그러나 세자의 교육과 관련된 자료로는 현재 순조 임금의 세자인 효명세자의 입학과 관련한 ‘입학의궤’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효명세자의 경우 탄강(誕降)·책봉(冊封)·입학관례(冠禮)·가례(嘉禮) 등 주요 의례에 관한 다양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주목된다. 정축입학도첩은 효명세자와 관련 여러 의궤 중 1817년 왕실 학교인 ‘세자시강원’에 입학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것이다. 모두 6폭의 입학 의식을 묘사한 그림[班次圖]과 의식절차, 하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15점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래되는 것은 경남 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정축입학도첩을 비롯해 모두 6점뿐이다. 이들 화첩들은 중요한 부분에서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표제(表題)가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재질이나 내용면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남 대학교 소장 정축입학도첩이 장황의 면에서 옛 방식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을 뿐더러 화첩의 내용이 결실이 없고 다른 첩에는 보이지 않는 홍경모의 서문까지 실려 있어 소장자도 추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 첩에는 모두 6편의 입학 장면이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출궁의(出宮儀)’는 왕세자가 동궁인 창경궁을 출발해 입학례가 거행되는 성균관(成均館)으로 향하는 그림이다. 좌우의 시위와 함께 세자를 상징하는 ‘세자인’을 모신 여(轝)가 따르고 있다. ‘작헌의(酌獻議)’는 입학 의식이 거행되기 전, 성균관 대성전으로 들어가 공자와 공자의 4대 제자, 유학의 16현자들에게 술을 따라 올리며 예를 올리는 모습이다. 그런 다음 다시 성균관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으로 나와 정식적인 입학 절차가 거행되는데 그에 따른 ‘입학의(入學儀)’는 모두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승, 즉 시강원 박사에게 학문을 청하는 의식, 가르침을 승낙한 스승에게 술과 맛있는 안주를 비롯한 다섯 가지의 선물을 올리는 의식, 그리고 명륜당 건물 안에서 거행되는 첫 수업의 장면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수하의(受賀儀)’는 모든 입학 의식을 끝내고 다시 동궁으로 되돌아와 종친과 여러 대신으로부터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하게 된 것을 축하받는 장면이다. 유교권의 국가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곧 완전한 인격체의 회복을 의미한다.
본 첩의 경우, 화풍으로 보아 4인 이상의 화가가 동원되어 그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것은 큰 대규모의 행사를 혼자서 다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며 때문에 여러 화가들이 각기 다른 장면을 맡아 각각의 장면을 그리고 나중에 모아서 장첩(粧帖)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는데 장첩은 의궤 작성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림의 표현 기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그린 부감법(俯瞰法)이 이용되었으며, 중요 인물을 돋보이게 그려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