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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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麟角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慶南 大學校 博物館)에 소장된 탁본첩(拓本帖).
[개설]
『인각비』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인각비』는 그 중 한 종이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0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인각비』는 1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33㎝×20㎝이고, 전체 쪽수는 10면이다. 한 면(面)에는 5행(行)씩 오려 붙였으며, 각 행에는 10자 또는 9자씩 들어 있어 대략 한 면에는 50자 정도가 실려 있다. 책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인각비』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인각사(麟角寺)에 있는 보각 국사(普覺 國師) 일연(一然)[1206-1289]의 묘탑비에 대한 탁본집으로, 불완전본이다. 현재 이 비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비신(碑身)은 일찍이 파손되었고, 지금은 세 조각만이 남아 있다. 다행히 옛 탁본이 남아있어 전문(全文)을 알 수 있다. 원래의 비신은 높이가 1.8m, 너비는 1.06m 정도로 추정된다. 비문은 민지(閔漬)[1248~1326]가 짓고 문인 죽허(竹虛)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1295년(충렬왕 21)에 세웠다. 원나라 간섭기에 국사(國師)라 칭하지 못하고 국존(國尊)이라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 비석의 제액에서는 ‘보각국사’라고 하는 등 칭호의 문제를 살필 수 있고, 비문의 내용은 일연의 출생과 출가, 그리고 입적 등의 생애와 함께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과 문답한 내용 등이 실려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하여 백 여 권의 저술을 나열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음기는 문인 산립(山立)이 지었는데 국사의 행적 몇 가지와 문도들을 승려와 재가로 나누어 열거하였다.
일연의 속성은 김씨, 이름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 경주 장산군(章山郡)[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彦弼)이다. 9살 때인 1214년 해양(海陽)[지금의 광주(光州)]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닦고 1219년에 설악산의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대웅장로(大雄長老)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227년(고종 14) 상상과(上上科)에 급제한 이후 포산(包山)[지금의 달성군 비슬산]의 보당암(寶幢庵) 등지에서 머물렀으며, 1237년에 삼중대사(三重大師), 1246년 선사(禪師)가 되었다.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되었고, 1261년(원종 2) 원종(元宗)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禪月社)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知訥)의 법맥을 계승했다. 1277년(충렬왕 3)부터 충렬왕(忠烈王)의 명에 따라 청도의 운문사(雲門寺)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에 착수했다. 1283년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라는 호를 받았으나 노모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1284년 인각사(麟角寺)에서 2회에 걸쳐 구산문도회(九山門徒會)를 열기도 하였다. 1289년 7월 왕에게 올리는 글을 남기고 입적했다.
일연은 12세기 이후 고려 선종계에 유행한 임제선(臨濟禪)의 영향에 의해 간화선(看話禪)에 심취했으나,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하며 선·교(禪敎)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했다. 그의 저술의 특징은 선종 계통이 주를 이루며, 사전(事典)의 성격을 지닌 저작이 많다는 것이다. 한편 『삼국유사』 찬술을 위해 1278년에 이미 「역대연표」를 작성하고, 이후 그의 나이 73세~76세에 운문사에서 『삼국유사』의 찬술을 완성하였다. 시호는 보각(普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