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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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文貞公筆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慶南 大學校 博物館)에 소장된 서첩(書帖).
[개설]
『성문정공필적』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 縣立 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성문정공필적』은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성문정공필적』은 14쪽으로 구성되었으며, 표지에는 ‘성문정공필적(成文貞公筆蹟)’이라는 제명이 붙어 있다. 크기는 35㎝×27㎝이며,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성문정공필적』은 문정공 성수침이 당나라 가지(賈至)가 쓴 「군산시(君山詩)」 등을 행초(行草)로 쓴 서첩이다. 성수침은 조선 중기의 명필로 이름을 떨쳤다. 하여 당시 사람들은 그의 필적을 얻어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의 필적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성문정공필적』은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하겠다.
성수침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중옥(仲玉) 호는 청송(聽松)·죽우당(竹雨堂) 이다. 아우 수종(守琮)과 함께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천거되었으나, 곧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처형되고 그를 추종하던 많은 유학자들이 유배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두문불출하였다. 이때부터 경서를 두루 읽고 『태극도(太極圖)』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조화(造化)의 근본 탐구에 몰두했다. 1541년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처가가 있는 파주(坡州)의 우계(牛溪)에 은거했다. 1552년(명종 7)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와 예산현감(禮山縣監) 등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 벼슬이 주어졌으나 모두 나가지 않고 성리학에 몰두하며 제자들 양성에 힘썼다. 그리하여 그의 문하에는 아들 혼(渾)을 비롯해서 많은 석학들이 배출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는데, 그의 서법은 조맹부(趙孟頫)로부터 나왔지만, 기일(奇逸)하고 탈속(脫俗)함으로 말하면 조맹부 보다 오히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죽은 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청송집』이 있으며, 글씨로 「방참판유녕묘갈(方參判有寧墓碣)」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