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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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觀海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해정길 17[교방동 23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경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창원 관해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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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창원 관해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중수|중건/시기 | 1885년 5월 1일 - 창원 관해정 본채 중수 |
중수|중건/시기 | 1886년 - 창원 관해정 중건 |
훼손 시기/일시 | 2003년 - 창원 관해정 경남 발전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중수|중건/시기 | 2003년 - 창원 관해정 보수 및 복원 |
현 소재지 | 창원 관해정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해정길17[교방동 237]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 지붕 한옥 |
관련 인물 | 정구|허목|허전 |
크기(높이,길이,둘레) | 4칸[정면]|2칸[측면] |
면적 | 462.812㎡[대지]|85.95㎡[건평] |
소유자 | 창원시 유도회 |
관리자 | 창원시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개설]
창원 관해정은 본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를 배향한 회원 서원(檜原書院)에 부속되었던 정자이다.
[건립 경위]
정구의 기(記)를 보면 1567년에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과 함께 김해의 산해정(山海亭)에서 지내면서, 산해정의 풍광에 감동하였고, 십여 년이 지난 1613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뒤 함안(咸安)의 여러 유학자들과 함께 이 정자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회원 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 부르는 무학산 계곡 등산로 입구에 있다. 주소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해정길 17이다.
[형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건물이다.
[현황]
관해정 본채는 1885년(고종 23) 5월 1일에 중수하였고, 1886년(고종 24) 중건하였다. 2003년 경남 발전 연구원에서 보수와 정비를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시굴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보수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관해정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큰 방문 위에 걸려있는 ‘취백당(聚白堂)’이라는 간판이 있다. 이는 ‘백미(白眉), 즉 뛰어난 인재들을 모으는 집’이라는 뜻이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정구와 허목의 향사를 모신다. 2003년 시굴 당시 중수 전의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와 삼국 시대 돌덧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정구가 직접 심었다는 수령 44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원은 선현을 존숭하고 후학을 기르려는 뜻으로 설립된다. 창원 관해정은 서원보다 먼저 생긴 것으로서, 조식이 머물었던 산해정의 정신을 이어받고 학문과 수양을 진작하려는 뜻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