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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이귀·이시백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762
한자 天安李貴-李時白影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261-1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0월 31일연표보기 - 천안 이귀·이시백영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천안 이귀·이시백영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장처 천안 박물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261-10 지도보기
성격 영정
작가 안득사[이시백 영정]
소유자 연안 이씨 종중
관리자 천안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천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귀이시백 부자의 영정.

[개설]

천안 이귀·이시백영정(天安李貴·李時白影幀)이귀[1557~1633]와 이귀의 아들 이시백[1581~1660], 이시방(李時昉) 형제가 모두 1623년 인조를 영립하는 데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으로 책록되고 하사받은 영정이다. 천안 이귀·이시백영정은 모두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 성봉 서사에 봉안되어 있다가 다시 후손들이 각각 자택에 소장하여 오던 중 문화재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천안 박물관과 대전 선사 박물관 등에 기증함으로써 이귀이시백 부자의 영정을 천안 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1. 이귀 영정

이귀가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있는 반신상 형태의 초상이다. 본래 공주 삼연 영당(三延影堂)에 이시백, 이시방의 영정과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상단에 해서체로 ‘정사공신 증영의정 연평 부원군 충정공 묵재 이 선생 진상(靖社功臣贈領議政延平府院君忠定公默齋李先生眞像)’이라 적혀 있다. 정확한 제작 연대와 그린 인물은 불명이다.

1품관이 착용하는 공작 흉배와 서대(犀帶)[1품관이 허리에 두르던 띠]를 착용하고 있어 도상 자체는 인조반정으로 정사공신 1등 연평 부원군에 봉해졌을 때의 공신도상과 일치한다. 얼굴에 연분을 섞는 분홍색을 배채(背彩)하고 비단 앞면에서 다시 연분을 섞은 분홍색을 후채한 뒤 적갈색 필선으로 얼굴을 선묘하고 주름 사이를 더 어둡게 선염(渲染)[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칠하는 것]하여 명암을 표현하였다.

2. 이시백 영정

이시백이 청색 단령(團領)을 입고 있는 반신상의 초상이다. 본래 공주 삼연 영당(三延影堂)에 아버지 이귀, 동생 이시방의 영정과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상단에 해서체로 ‘정사공신 영의정 연양 부원군 충익공 조암 이 선생 진상(靖社功臣領議政延陽府院君忠翼公釣巖李先生眞像)’이라 적혀 있다. 정확한 제작 연대와 화가는 알 수 없다.

얼굴을 섬세한 적갈색 필선으로 가늘게 선묘한 뒤 흰색을 엷게 배채하고 적갈색 담채(淡彩)로 섬세하게 선염하며 명암을 넣되 콧등과 광대뼈 등 볼록하게 나온 부분에도 적갈색으로 홍기(紅氣)를 강조하는 이중 명암법을 사용하여 화법상 17세기 초반의 정사공신상의 특징을 잘 전해 준다. 단령은 청색이 강해 통상 짙은 흑자색이나 회청색이 감도는 정사공신상의 전형적인 단령과 다르다.

[특징]

1. 이귀 영정

초상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턱이 뾰족하며 눈이 부리부리해 평소 성품이 강개하였다는 연평 부원군 이귀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

2. 이시백 영정

현존하는 정사공신상의 원본과 달리 주사(朱砂)를 칠한 붉은색 흉배 바탕에 금분으로 번개무늬를 그려 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표제에도 이시백 사후에 내려진 충익공(忠翼公)이라는 시호가 쓰여 있는 점으로 볼 때, 최소한 이시백 사후인 17세기 중반 이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집안에 소장된 성책 고문서인 『삼연 영당 의절(三延影堂儀節)』[1824년경]에 의하면 화사(畵師) 안득사에게 진본을 보내어 모사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것이 바로 이때에 제작된 모사본이 아닌가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공신 화상은 맹족(盟簇), 교서(敎書)와 함께 공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물질적인 상물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다. 공신에서 삭훈(削勳)[공적을 깎음]될 경우에는 반드시 소각을 명령할 만큼 공신상이 의미하는 바가 컸다. 이귀, 이시백, 이시방은 모두 1623년 인조를 영립하는 데 공을 세운 정사공신으로 책록되어 영정을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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