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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45
한자 徐萬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종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성별

[정의]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효자.

[활동 사항]

서만(徐萬)은 목천군 북면 사담리[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사담리] 출신이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삭망[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는 술과 음식을 갖추어 봉양하였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으나 평생을 한결같이 이행하였다. 부모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천리 길을 가서라도 구해다 드렸다고 한다.

서만의 효행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서 매우 위중하였는데 별안간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엄동설한이라 못과 방죽이 꽁꽁 얼어붙어 어찌할 도리가 없자 서만은 냇가 여울에 가서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잉어를 얻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그러자 무릎 밑의 얼음이 체온으로 녹으면서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으로 느닷없이 잉어 네 마리가 뛰어 올라 얼음 위에 나뒹굴었다. 서만은 하늘을 향하여 사례하고 잉어 두 마리를 집어 들고 두 마리는 물속에 도로 넣어 주었다. 두 마리면 약에 쓸 양으로 넉넉하다고 여겨 두 마리는 물속으로 살려 보낸 것이다. 네 마리 모두 가져가면 약으로 쓰고 남아서 다른 가족까지 먹게 될 터인데 하늘이 준 잉어를 어찌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서만이 잉어를 얻은 여울을 ‘이어담(鯉漁潭)’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삼 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묘소]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사담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찾을 길이 없다.

[상훈과 추모]

서만의 효행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1480년 마을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1816년(순조 16)에 군수 조국인이 지나가다가 정문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보고 중건하였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정려지 표석만 남아 있다. 사담리에서 90년 가까이 살아온 이한수에 따르면, 5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문의 비석이 있었는데 없어져서 마을 노인들이 표시라도 해 놓자고 하여 시멘트로 기둥을 만들고 『대록지』를 참고하여 효자 서만의 행적을 대리석에 간략하게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 『국역 대록지』(아우내 문화원, 2000)
  • 인터뷰(천안시 북면 사담리 주민 이한수, 남, 87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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