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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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審言 |
이칭/별칭 | 병암(屛巖)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항덕 |
거주|이주지 | 이심언 거주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광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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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청주(淸州) |
[정의]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병암(屛巖)이다. 감찰(監察)을 지낸 윤광(允光)의 증손자이다. 아들인 이간(李衎)이 1606년(선조 39) 증광시(增廣試)에 생원 3등(三等) 70위로 합격한 기록이 있으며, 딸은 윤안성(尹安性)의 후처가 되었다.
[활동 사항]
이심언(李審言)은 임진왜란 때에 판관을 지낸 숙부 여청(汝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싸운 공적으로 첨정(僉正)이 되었다. 아우 이심행(李審行)과 함께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불렸다. 부모가 쌍을 떠나자 6년간 죽을 마시며 여막(廬幕)에서 시묘 살이를 하여 출천지효(出天之孝)라는 칭송을 받았다.
또한 문명(文名)으로 감관(監官)[조선 시대 각 관청과 궁방에서 회계를 맡아 보던 직책]의 우두머리를 계속 유지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기도 했다. 아우 이심행이 젊은 나이에 죽은 뒤 효행으로 증직되었다. 천안시 동면 광덕리의 옛 지명에 분토동이 있는데, 선조 때 의사 이심언과 이심행이 살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