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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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世基 |
이칭/별칭 | 구보(逑甫),반곡(磻谷)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선명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구보(逑甫), 호는 반곡(磻谷)이다. 판서를 지낸 한철충(韓哲冲)의 10세 손이며, 감역(監役)을 지낸 한응남(韓應南)의 고손자이다.
[활동 사항]
한세기(韓世基)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타고난 품성이 후덕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바쳤고, 어머니가 병들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다.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예법을 갖추고 정성을 다해 삼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 문장과 덕행이 높고 의리를 중시하여 1722년(경종 2)에 죽음을 당한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頥命)·조태채(趙泰采)·이건명(李健命)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사대신변무소(四大臣卞誣疏)’를 영조에게 올렸다. 영조는 상소를 받아 보고 “이 일은 내가 일찍이 마음속으로 묵묵히 생각했는데, 이제 너희들의 소를 보니 나의 슬픈 마음을 더한다. 그러나 공격하는 말에 이르러서는 내가 실로 병통으로 생각한다.”라고 답변하였다.
우의정 조도빈(趙道彬)이 한세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시(挽詩)가 전한다.
호방한 선비가 우리 고을에 누가 있는가?
평생 빼어난 기개는 서유를 가리었도다.
어찌하여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았는가?
천대(泉臺)에 묻혔으니 그대의 슬픔을 생각하노라
참판(參判) 홍봉조(洪鳳祚)도 다음과 같은 만시(挽詩)를 남겼다.
빼어난 글은 젊은 날에 청운의 뜻을 넘었고
상소는 당년에 참된 도를 지키었네.
늙어 은석산 기슭으로 돌아가니
가련하구나! 마침내 한 서생이 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