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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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炳玉生家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261-6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5년 4월 20일 - 조병옥 생가 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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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1월 - 조병옥 생가 국가 보훈처 현충 시설로 지정 |
현 소재지 | 조병옥 생가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261-6 |
성격 | 가옥 |
양식 | ㅡ자 형 목조 초가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 보훈처 현충 시설[지정 번호 20-1-4]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 있는 조병옥의 생가.
[개설]
조병옥(趙炳玉)의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유석(維石)으로 공주 영명 학교를 거쳐 1911년 평양 숭실 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뒤 송진우·장덕수 등과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청의 경무 부장에 취임하여 치안 유지와 공산당 색출에 진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948년 대통령 특사 및 유엔 한국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6·25 전쟁 때는 내무 장관으로 대구 사수에 혼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과의 충돌로 관직을 사임하고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서 1954년과 1958년에 제3대 및 제4대 민의원, 1955년 민주당 최고 위원, 1956년 대표 최고 위원, 1960년 민주당 공천의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되었으나 선거 1개월 앞두고 미국 월터리드 육군 의료 센터에서 사망하였다.
조병옥 선생은 1962년 건국 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위치]
조병옥 생가(趙炳玉 生家)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261-6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1894년부터 1960년까지 조병옥이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1995년 4월 20일 기와집으로 변형되어 있는 가옥을 문중의 고증을 받아 다시 현재의 초가집으로 복원하였다.
[형태]
조병옥의 생가는 ‘ㅡ’자 형 목조 초가집과 부속 건물로 헛간과 외양간이 있다. 본채를 중심으로 우측에 우물과 향나무가 있고, 좌측 뒤편에는 측벽나무가 있다. 사리문 돌담의 바깥 주차장 우측에 조병옥의 생애를 기록한 기념비가 있다.
[현황]
조병옥 생가는 2002년 11월 국가 보훈처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지정 번호 20-1-4]. 면적은 1,600㎡이며,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주차장 옆에는 조병옥의 생애를 기록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조병옥 생가는 삼은 초등학교와 결연을 맺고 교육 활동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