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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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成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69년 - 구성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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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3일 - 구성립 윤만파 의진의 소모장으로 의병 50여 명을 거느리고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8일 - 구성립 울산군 두서면에서 총기 7정을 약탈하여 은닉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9일 - 구성립 유진삼·권병호와 함께 대구 경찰서 파견 제1 변장대에 의해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9월 18일 - 대구 지방 재판소에서 강도죄로 기소되어 징역 1년 6개월 받음 |
출생지 | 구성립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활동지 | 구성립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활동지 | 구성립 활동지 - 경상북도 경주군 산내면 |
활동지 | 구성립 활동지 - 경상남도 울산군 두서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소모장 |
[정의]
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개설]
구성립은 1869년(고종 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서 출생하였다. 윤만파가 거느리는 의병 부대의 소모장으로, 1908년 4월경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경주·울산·경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정미의병 시기 청도 지역에는 윤만파(尹萬坡)와 최한룡(崔翰龍)이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으며, 그 외 박용운(朴龍雲)과 박문선(朴文善)은 산남 의진에 참여하여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경주·울산·경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일본군 토벌대의 보고에 의하면, 의병을 이끌고 있는 의병장이 강원도에서 들어왔다는 보고가 있기도 하나, 대체로 청도 출신의 의병장 윤만파와 그의 중군장 권달오(權達五)·소모장 구성립(具成立)·유진삼(兪進三) 등을 비롯하여, 경산 출신의 의병 대장 권병호(權炳瑚), 산남 의진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군장 박용운 등이 이끄는 소규모 의병 부대가 청도군 운문면 일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구성립(具成立)[1869∼?]은 1908년 4월 3일[음력 3월 3일]경 경주군 산내면에서 창의한 윤만파 의진(尹萬坡義陣)의 소모장이 되어 밀양 출신의 종사 유진삼 등 의병 50여 명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이들은 4월 8일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울산군 두서면(斗西面)에서 총기 7정을 약탈하여 경주군 산내면 산저리(山底里)에 은닉하였고, 또 4월 9일에는 소모장 구성립이 공암리 윤감찰(尹監察)에게 군수전 500량의 출금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구성립과 종사(從事) 유진삼은 4월 9일 경산군 남천면(南川面) 협석동(俠石洞)[현재 신석리] 출신의 의병장 권병호와 함께 청도군 운문면에서 대구 경찰서 파견 제1 변장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들은 1908년 9월 18일 대구 지방 재판소에서 강도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구성립은 징역 1년 6개월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