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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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助攬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고대/삼국시대/고구려,고대/남북국시대/통일신라 |
집필자 | 김호동 |
개정 시기/일시 | 757년 - 조람현에서 진안현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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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조람현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영덕군 달산면 |
[정의]
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조람현(助攬縣)은 삼국시대부터 757년(경덕왕 16) 진안현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 일대에 있던 주현(州縣)으로 행정뿐만 아니라 군사 구역이기도 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고구려의 영역이다.
[관련 기록]
조람현에 대한 자료는 매우 소략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때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지명 변경과 연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雜志) 제4, 지리(地理) 2, 신라조(新羅條)에 따르면 “진안현(眞安縣)은 본시 고구려의 조람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보성(甫城)이다.”라고 나타나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는 “보성부[재암성(載岩城)이라고도 함]는 신라 경덕왕이 칠파화현을 진보현으로, 고구려 때의 조람현을 진안현(眞安縣)으로 고쳤는데, 고려 초에 이 두 개 현을 합쳐 보성부를 설치하였으며, 현종 9년에 본 주에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진보현에는 “경덕왕이 칠파화현을 고쳐 진보라 했으며,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보성(甫城)이다. 또 ‘고구려의 조람현을 고쳐서 진안으로 하여 야성군(野城郡)의 영현을 삼았는데, 지금의 보성부다.’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진보·진안 두 현이 합하여 보성부가 된 것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진보현,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는 “칠파화현을 신라 경덕왕이 진보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조람현을 경덕왕이 진안으로 고치고, 야성군의 영현으로 삼았는데, 고려 초에 두 현을 합하여 보성부를 설치하였다. 어떤 이는 재암성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려실기술』 별집 권16, 지리전고(地理典故), 주군(州郡), 진보에는 “칠파화현을 신라 때 진보로 고쳤고, 조람현은 진안으로 고쳤다. 고려 초기에 두 고을을 합하여 보성부를 두었는데, 재암성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삼국시대 때 한동안 고구려에 예속되어 조람현으로 불렸는데, 757년(경덕왕 16) 진안현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아울러 이때 칠파화현을 진보현으로 고쳤는데, 진안현과 진보현은 고려 전기에 합쳐져 보성부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람현의 설치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고대 지방통치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