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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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里靑松沈氏始祖墓域 |
이칭/별칭 | 청송심씨 시조묘,심홍부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산3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창국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산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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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묘역 |
관련 인물 | 심홍부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에 조성된 청송심씨의 시조 심홍부의 묘역.
[개설]
청송심씨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한 심홍부(沈洪孚)[생몰 연대 미상]를 시조로 받들고 있지만, 심홍부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그의 증손 심덕부(沈德符)[1328~ 1401]가 1385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러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가, 1393년(조선 태조 2) 회군공신 1등에 추록되며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진 후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이 심온(沈溫)[?~1418]인데, 심온의 딸이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이다. 그 외에도 청송심씨는 조선시대 동안 여러 재상과 청백리, 공신들을 배출하며 명문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위치]
덕리 청송심씨 시조묘역은 청송읍 덕리 산33에 있다. 청송읍 남서쪽에 있는 보광사(普光寺)[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현충로 51-352(덕리 429)] 좌측편의 능선상에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보광사 앞길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덕리 청송심씨 시조묘역을 만날 수 있다.
[변천]
심홍부 사후 최초 묘역을 조성한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보광산시조산소사적(普光山始祖山所事蹟)」의 “15대손 심봉휘(沈鳳輝)가 청송부사로 재임시[1726~1728년 재임] 전답의 측량을 다시 하여 70여 복을 더 붙여주고 종인으로서 도내 수령으로 오는 사람에게 권고하여 힘을 합해서 제기를 장만하고 그전에 없었던 향로석을 신설하였다. 봉휘의 자(子) 성희(聖希)가 본도의 도백으로 와서 상석을 개비하고 기사를 찬하였으며 성희의 질(姪) 공저(公著)가 영천군수로 재임시 표석을 고쳐 세웠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 이래 청송심씨 가문이 번성하는 과정에서 후손들에 의해 묘역이 여러 차례 단장되고, 새로운 시설이 추가로 조성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형태]
묘역은 전체적으로 석물이 있는 앞쪽은 편평하게 만들어졌고, 봉분 뒤쪽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경사가 심한 아래쪽은 돌로 축대를 쌓은 후 그 위에 난간을 둘러놓았다. 현재의 묘역은 축대와 새로 조성한 석물을 놓기 위해 일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묘는 봉토분으로 장축이 서북-남동 방향이며, 봉분 앞면 전체와 양측면의 일부는 호석으로 둘러진 형태이다. 봉분 바로 앞에는 장방형의 긴 석재를 놓아 석물이 놓인 자리와 단으로 구분하였다. 묘의 석물은 아래쪽부터 중앙의 장명등과 좌우의 망주석 각 1기, 그 앞 좌우의 문인상 각 1기, 묘 앞의 향로석·상석·혼유석, 무덤 왼쪽에 비석 1기가 있다. 향로석·상석·혼유석과 문인석, 장명등은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석문]
묘의 왼쪽편에 있는 비는 방형의 2단 비좌 위에 비신, 관석((冠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 전면에는 ‘고려국문림랑위위승청기군심홍부지묘(高麗國文林郎衛尉丞靑己郡沈洪孚之墓)’, 좌측면에는 ‘숭록대부전판돈녕원사해평윤용구서(崇祿大夫前判敦寧院事海平尹用求書)’라 새겨져 있다. 비문을 쓴 윤용구(尹用求)[1853~1939]는 개항기 문신이자 서화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현황]
덕리 청송심씨 시조묘역 인근에는 시조묘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데, 보광사와 찬경루(讚慶樓)가 대표적인 것이다. 보광사는 668년(신라 문무왕 8)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세종 때 소헌왕후 심씨가 절 근처에 있는 시조묘을 제향하기 위해 추모재(追慕齋)와 만세루(萬歲樓)를 짓고 원당사찰로 삼았다고 하지만, 역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이런 인연으로 청송심씨 후손들이 보광사를 중수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며, 만세루에는 대사헌을 지낸 심성희(沈聖希)[1684~1747], 심원열(沈遠悅)[1792~1866], 이만좌(李晩佐)[1886~1975]의 현판 3매가 걸려 있다.
찬경루는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조성된 소헌공원 안에 있다. 찬경루에는 경상도관찰사 홍여방(洪汝方)이 쓴「찬경루기(讚慶樓記)」가 걸려 있는데,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왕후와 왕족이 우리 조선에서 만세토록 끊이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 누에 올라 그 묘를 바라보면 저절로 우러러 찬사(讚辭)를 드리게 되기 때문에 찬경(讚慶)이라 이름을 지었다.”라고 하여, 이곳이 비가 많이 와서 용전천이 불어 시조묘에 갈 수 없을 때 제사를 지내던 제각(祭閣)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용전천을 건넜으나 비가 오는 날은 보광사 만세루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