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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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元符 |
영어공식명칭 | Shim Wonbu |
이칭/별칭 | 악은(岳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거주|이주지 | 두문동 -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지금의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의 서쪽 골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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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두문동서원 -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
사당|배향지 | 경현사 -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삼태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청송 |
대표 관직 | 전리판서 |
[정의]
고려 후기 청송 출신으로 조선 건국 후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악은(岳隱). 아버지는 전리정랑(典理正郎)을 지낸 심용(沈龍)이다. 심원부의 형은 조선 건국공신으로 좌의정을 지낸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이다. 아들로는 영동정(令同正) 심천윤(沈天潤), 현령(縣令) 심천주(沈天柱), 정몽주의 문인인 심천식(沈天湜)을 두었다.
[활동 사항]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하였으며,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에 들어갔다. 「부조현언지록(不朝峴言志錄)」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왕촉(王蠋)의 말에 경복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조선 건국 후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주고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자손들에게도 벼슬에 나가지 말 것을 경계하였다.
청송심씨는 심덕부와 심원부 형제 대에 경파(京派)와 향파(鄕派)로 나뉘는데 조선왕조 건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심덕부와는 달리 고려에 절의를 지킨 심원부의 자손들은 유훈을 지켜 고향에 살면서 벼슬을 멀리하였다.
[상훈과 추모]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에 있던 두문동서원과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삼태리에 있는 경현사(景賢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