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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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烈祠 |
영어공식명칭 | Sangryeolsa |
이칭/별칭 | 국계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808년 - 상렬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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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사당.
[개설]
상렬사(尙烈祠)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윤충우(尹忠祐)[1587~1637]를 봉향하기 위해 1808년(순조 8)에 건립되었다. 윤충우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그만둔 후에 고향인 청송으로 돌아왔다. 윤충우는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창의하였는데, 1637년(인조 15)에 쌍령전투(雙嶺戰鬪)에서 순절하였다. 나라에서 그 공을 인정하여 봉훈랑(奉訓郞)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에 증직하였다.
[위치]
상렬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유치호(柳致皜)[1800~1845]가 쓴 「국계상렬사기(菊溪尙烈祠記)」와 『쌍령순절록(雙嶺殉節錄)』에 수록된 「국계사중수기(菊溪社重修記)」 등을 보면, 청송부(靑松府) 국계(菊溪)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04년에 간행된 『청송지명유래총람』에 따르면, 청송읍 금곡3리의 옛 이름이 금연리(金連里) 또는 국계마을이었다고 한다. 1938년에 간행된 『청송군지』와 1962년에 간행된 『청송군사』에는 군의 남쪽 구평(九坪), 청송면 구평동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92년에 간행된 『경북마을지』에 따르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초막동(草幕洞), 구평동(九坪洞), 청운동(靑雲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곡동(金谷洞)이라 하고 청송읍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국계 또는 구평 모두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를 지칭한다.
[변천]
상렬사는 1808년에 건립된 이후 윤충우의 방손(傍孫) 윤두형(尹斗衡)이 새롭게 세웠으나, 일제강점기 때 훼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훼철 시기와 내력은 자료의 부족으로 알 수 없다. 훼철된 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