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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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支石墓 |
영어공식명칭 | Dolmen |
이칭/별칭 |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박경신 |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대표적인 거석 기념물.
[개설]
강원도 철원군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이다. 대부분 무덤으로 사용되었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 지석묘라고 부르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고인돌무덤, 일본은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대석개묘(大石蓋墓), 유럽에서는 거석기념물 또는 돌멘(Dolmen)이라고 부른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굄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하였다. 지역에 따라서 독배기, 바우배기, 독바우, 괸바우, 암닭바우, 거북바우, 두꺼비바우, 개구리바우, 칠성바우, 장군바우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총 4만여 기에 이르는데 전라남도 지방에만 2만여 기가 발견되었다.
[조사 기록]
강원도 철원군의 고인돌은 조사 시기에 따라 개체 수량이 상이하여 정확한 통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우선 철원군의 고인돌 현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이다.『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문혜리 4기, 지포리 11기, 토성리 1기 등 총 16기의 고인돌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6년 한림대학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조사 내용을 보면 군탄2리 1기, 문혜3리 2기, 신철원1리 5기, 지포리 5기, 토성리[지경리] 7기, 백양리 2기로 기록되어 있으나 6기만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1992년 『철원군지(鐵原郡誌)』에는 총 15개[문혜리 북쪽 남대천 강안 7기, 문혜리 3기, 지포리 5기]의 고인돌이 등간격을 유지하며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기록과 달리 대부분이 유실되고 6기만 잔존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1995년 김남돈은 토성리 2기, 문혜리 1기, 지포리 1기 등 4기만 잔존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2000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외촌리 1기[추정], 문혜리 3기, 토성리 2기, 장흥리 1기[추정]로 조사 결과를 보고하였다.
마지막으로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정밀 지표조사를 통하여 현재 고인돌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장흥리 1기[추정], 군탄리 1기, 토성리 2기, 문혜1리 1기, 문혜5리 1기 등 총 6기만 잔존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한편 2004년 임진강 유역권에 분포하는 고인돌을 분석한 최민정은 하식점리 3기, 저탄리 27여 기[닭밭 10여 기, 두문동 4기, 새돌 6기, 어은동 7기], 류대포리 4기, 문암리 13기[서쪽 10기, 동쪽 3기], 토성리 7기, 문혜리 1기, 신철원리[지포리] 5기 등 50여 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하여 기존의 기록과는 상이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공통적으로 모든 조사 결과는 기존 사료 조사 내용을 토대로 현황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점에서 정밀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광역 지표 조사 결과가 현재로서는 가장 정확한 조사 결과로 판단된다.
[특징]
강원도 철원군은 주변이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스럽게 정치체의 사회적 상징인 고인돌은 천변에 형성되어 있는 넓은 충적 대지에 규칙성을 띠고 축조되었다. 철원군 소재 고인돌은 한탄강 지류인 남대천을 따라 등간격[약 200~300m]으로 축조되어 있는 특징이 관찰된다. 고인돌은 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산물로 당시 철원군 일대에 존재하였던 정치체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철원군의 고인돌은 모두 소위 탁자식(卓子式)으로 불리우는 북방식 고인돌로 중국 동북 지역과의 관련성이 꾸준하게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전후 복구 과정에서 민가 건설에 고인돌의 석재가 사용되었고, 경지정리 과정에서 대부분의 고인돌이 제 위치에서 이탈하여 방치되고 있으므로 체계적인 보존 대책이 시급하게 필요하다.